“오늘은 칭찬할 게 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은 지난 13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운을 뗐다. 직전 경기였던 지난 11일 잠실 NC전 4-3 끝내기 역전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고참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에 감동받은 모습이었다.
이날 LG는 1-1 동점으로 맞선 9회초 실책으로 2점을 내줬다. 2사 2,3루에서 NC 김성욱의 3루수 정면 땅볼 타구를 구본혁(27)이 놓친 것이다. 바운드를 맞추지 못했고, 옆으로 튄 공을 몸으로라도 막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수비가 좋기로 소문난 구본혁이지만 평범한 타구에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범했다. 실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9회초 동점 상황에서 나온 게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LG는 곧 이어진 9회말 오스틴 딘의 솔로 홈런으로 추격한 뒤 문보경의 2루타, 김현수의 볼넷으로 이어진 2사 1,2루에서 박동원의 좌익수 키 넘어가는 끝내기 2타점 2루타로 4-3 짜릿한 역전승 거뒀다. 덕아웃에서 가슴을 졸이며 경기를 보던 구본혁이 가장 먼저 박동원에게 달려가 진한 포옹을 나눴다.
4-3 끝내기 역전승이란 결과도 좋았지만 염경엽 감독은 실책 이후 덕아웃 모습이 더욱 좋았던 모양이다. 염 감독은 “본혁이가 실책을 하고 들어왔을 때 어떻게 위로해줘야 하나 고민했다. 우리가 써야 할 선수니까 멘탈이 무너지지 않게 어떻게 살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현수, (오)지환이를 중심으로 (박)동원이, (박)해민이, (홍)창기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본혁이한테 가서 위로를 하더라. 코칭스태프들이 해야 할 일을 고참들이 해줬다”고 말했다.
구본혁으로선 멘탈이 붕괴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고참들이 다가가 “본혁아 괜찮아. 뒤집을 수 있어. 이기면 돼”라고 격려하며 움츠러든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줬다. 염 감독은 “고참들이 말한 대로 경기를 진짜 뒤집었다. 본혁이한테 엄청난 위로가 됐을 것이다. 형들이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염 감독은 “코칭스태프가 할 일이 없을 정도로 고참 선수들이 알아서 움직이는 걸 보고 우리 팀이 좋은 방향으로 잘 가고 있구나 싶었다. 지금 고참들이 경기와 훈련 방식뿐만 아니라 리더십 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칭찬하고 싶다. 나중에 본혁이도 고참이 되면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면서 좋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과거 LG는 선수단 분위기가 경직되고, 끈끈한 힘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2018년 김현수가 합류한 뒤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었고, 지난해 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기점으로 선수단 전체가 하나로 뭉치는 팀워크가 다져졌다.
염 감독은 “누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서로 극복하기 노력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조직이 잘 된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고참들이 잘해줘서 엄청 고맙다”면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내가 있든 없든 앞으로 10년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LG의 미래는 밝다. 예전에 갖고 있던 LG 문화랑은 완전히 다르다. 전력 외적으로 더 강해질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장담했다.
13일 한화전에도 LG는 동료들의 실수를 극복하는 야구로 이겼다. 2-2 동점으로 맞선 9회초 무사 2루에서 보내기 번트를 시도한 안익훈이 초구에 1루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나 흐름이 끊길 뻔 했다. 하지만 다음 타자 홍창기가 좌전 적시타로 2루 주자 박해민을 홈에 불러들여 결승점을 냈다. 안익훈의 번트 실패를 지운 한 방이었다.
계속된 1사 2루에선 신민재의 유격수 땅볼 때 홍창기가 굳이 3루를 노리다 아웃됐고, 2사 1루에선 신민재도 투수 견제에 걸려 1루에서 아웃됐다. 두 번의 주루 미스로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지만 9회말 마무리투수 유영찬이 차단했다. 볼넷 1개만 허용하며 나머지 3타자를 잡고 3-2 승리를 지켰다. 동료들의 실수를 덮어버린 ‘팀 승리’였다.
최근 5연승을 질주한 2위 LG는 59승48패2무(승률 .551)를 마크, 1위 KIA(64승45패2무 승률 .587)에 4경기 차이를 유지했다. 쉽지 않지만 포기할 격차는 아니다. 홍창기는 “작년에 1위를 할 때는 쫓기는 입장이었다. 확실히 쫓기는 것보다 쫓아가는 게 마음 편하다. 야구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며 끝까지 1위 추격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