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넷플릭스에서 만든 한국 오리지널 예능이라고?"
여자 출연자들의 '벗방'(벗는 방송)이 끊임 없이 펼쳐졌고, 별다른 콘텐츠 없이 어그로 끌기가 넘쳐났다. 물론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도, 서바이벌의 내용이 처참해도 너무 처참했다.
8월 6일 첫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인플루언서'는 장근석, 이사배, 빠니보틀, 오킹, 진용진, 심으뜸, 대도서관, 시아지우, 과즙세연 등 한류 배우부터 1세대 유튜버, 그리고 2700만 팔로워를 거느린 틱톡커까지 영향력이 곧 몸값이 되는 대한민국 인플루언서 77인 중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경쟁하는 소셜 생존 서바이벌 예능이다. 화려한 캐스팅 라인업이 공개되고 엄청난 관심을 받았기에 본편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노출과 어그로 파티의 총집합이나 다름 없었다.
2라운드 라이브 방송 미션은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치로 발휘해 시청자수를 집계, 합격자와 탈락자를 공개했다. 이때부터 벗방을 의심케하는 모습과 어그로의 향연이 시작됐다. 살아남기 위해 사이버 렉카 뺨치는 낚시성 제목과 19금 수위를 넘나 들었다.
과즙세연은 남성을 앉혀두고 몸매를 밀착해 섹시 댄스를 췄는데, 선정성과 유해성으로 논란이 된 아프리카TV를 옮겨 놓은 듯했다. 표은지는 라이브 룩북을 빙자한 속옷 패션쇼를 선보였고, 이 외에도 일부 남녀 출연자들이 알맹이 없는 콘텐츠와 다소 가학적인 화면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공법으로 가던 이사배는 팬들로부터 "방 제목과 썸네일을 자극적으로 바꾸자"라는 얘기를 들었고, 타협점을 찾아 '눈물의 부탁'을 내걸었다.
이사배는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라이브가 진행된 탓에 방송 내내 걱정했고, "언니 이거 화면 켜놓고 좀 졸아도 괜찮아요?"라는 댓글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미안해 잠 못자게 해서..팬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며 하위권을 탈출해 극적으로 생존했다.
3라운드 '피드 사진 제작'에선 인플루언서끼리도 놀랄만큼 수위가 대단했다. 14명이 2명씩 팀을 이뤄 한 장의 사진을 제출해야 했다. 7초 동안 아이트래킹을 거쳐 100인의 평가단에게 선택받아야 했다. 한 마디로 시선을 최대한 오래 끄는 사진이 필요했다.
첫 번째 게임에선 장근석이 '텍스트가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 손 쉽게 1위를 차지했지만, 이후 마이부가 얼굴도 없는 가슴 클로즈업 사진을 찍었고, 과즙세연은 파트너 준우를 변태로 오해할만한 설정샷을 촬영했다. 표은지도 다르지 않았다. 반려견과 함께 찍는 사진에서도 가슴 강조는 필수였다.
두 번째 게임 피드가 공개되자, "가슴"이라는 짧은 탄식이 터졌고, 이사배는 "내가 어떻게 저걸 이기냐?"며 고개를 저었다. 장지수는 "가슴만 몇 개냐?"고 놀랐고, 준우는 "야 이건 심하다.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얼굴이 없는 몸 사진이다. 이거 진짜 어떤 생각으로 찍으신 거지?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승 진출을 앞둔 4라운드에선 인플루언서 자질을 검증한다며, 메타인지, 파급력, 설득력, 콘텐츠 분석력 등을 증명하는 4개의 게임을 준비했다.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였지만, 몇 몇 게임은 다소 유치했다.
과즙세연은 해시태그를 많이 쟁취하는 게임에서 "전 남친에게 폭로를 당했으니 '#폭로' 해시태그는 내가 가져가야 한다"고 했고, 뽀구미는 "내가 여러번 성형했다. 쌍수를 2번 했으니 '#성형' 해시태그는 내 것", 오킹은 "기부를 많이 하고 봉사활동도 자주 했다. #선한영향력을 가져가겠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파이널 결승 무대가 인플루언서들의 능력을 가리는 라운드로 작용했고, 4인이 경쟁을 벌인 끝에 오킹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단 한 번의 어그로 없이 최종 2위에 오른 이사배는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난 앞으로도 내 소신을 지키는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며 소감을 남겼다.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이토록 자극의 끝판왕을 달린 이유는 제작진의 영향이 제일 크다.
매 라운드마다 개인의 전문성과 능력은 배제한 채 오직 '관심 끌기'만을 목적에 둔 게임을 진행했다. 여기에 실내에서 상당한 제약이 따르는 일부 유튜버와 라이브 방송 경험이 적은 틱톡커 등을 고려한 야외 미션이 전무했고, 사진 미션을 3번 실시하는 동안 대세인 '숏폼 제작'이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또한 '1인 미디어' 인플루언서를 섭외한 만큼 기획과 편집 능력을 확인하는 '영상 제작'마저도 없었다는 점은 연출 및 작가진들의 판단 미스 혹은 역량 부족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러니 모두가 단 시간에 눈을 홀리려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쥐어짜냈고, 더 야하게, 더 어그로를 끄는 구조였다.
결국 제작진이 지향하는 인플루언서란 '알맹이 따윈 없어도 어그로만 잘 끌면 된다'라는 것일까? 지난 13일 모든 회차가 공개되면서 마무리된 '더 인플루언서'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씁쓸한 뒷맛을 안긴다.
/ hsjssu@osen.co.kr
[사진] 넷플릭스 '더 인플루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