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현란한 액션으로 메울 수 없는 헷갈리는 설정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8.16 13: 58

[OSEN=김재동 객원기자] 14일 전편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은 스페인어 '악당(picaro)'에서 유래한 피카레스크 드라마다. 주인공부터 악당들로 넘쳐난다. 주요 배역 4명이 모두 악당이다.
먼저 사건을 불러일으킨 설계자 최국장(김선호 분)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정부기관 내 이너서클의 우두머리다. 비밀스런 조직 내에서도 비밀스런 결사의 수장답게 극단적 국가관에 매몰돼 있다.
결사의 목적을 위해 조직원을 희생시키는데 주저함이 없고 비밀 유지를 위해 자신에게 헌신하고 의지해온 노교수(최정우 분)를 향해서도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고뇌하는 지식인 같은 표정으로 일말의 연민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제 목숨까지 포함해 생명을 지우는데 가차없는 전체주의자다.

기술자 최자경(조윤수 분)은 잠금해제의 달인이란 설정이지만 드라마 상에선 그 기술보다 전문 청부업자같은 살인기술만이 현란하다. 죽은 쌍둥이 오빠와 뇌를 같이 쓰는 이중인격자로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다.
토막 난 채 가방에 차곡차곡 개켜진 양부(이성민 분)의 시신을 확인하고도 잠깐 울컥했지만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았다. 언젠가 겪을 일 정도로 치부했고 다만 그 큰 덩치를 작은 가방에 밀어넣을 수 있단 사실 정도만이 이채로왔을 뿐이다.
‘절대 계획되로만 되진 않는 게 인생이고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양부의 가르침만을 삶의 이정표로 삼는다. 자신을 속이고 죽이려한 연모용(무진성 분)에 대한 복수에는 나서지만 무슨 절절한 복수심 때문은 아니고 그저 당위일 뿐으로 받아들인다.
은퇴한 전직 요원 임상(차승원 분)은 수더분한 중늙은이 살인자다. 퇴직금이 모자라 청소부 노릇을 유지하며 열차 객차를 개조한 집 가꾸기에 열성이다. 고문과 살인은 그저 직업.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댓가를 받아 취미이자 낙인 집을 꾸미는 성실한 생활인이다.
폭군 바이러스의 변이체를 목격한 시골부부를 죽이면서도 “보셨구나! 그걸 왜 보셔가지고..” 정도의 가벼운 안타까움만 읊조릴 정도로 살인에 무감하다.
한때는 전설로 미국 요원 폴(김강우 분)까지 선망할 정도였지만 늙다보니 고교생 양아치들 제압하는데도 삭신이 쑤시는 판이다.
추격자 폴은 미국 정보조직 헤드 원의 요원이다. 세계 평화는 힘있는 미국이 지킨다는 미국 제일주의자다. 그런데 한국이 감당못할 물건을 만들었다.
미국 역시 ‘슈퍼 아미’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병기를 만들어냈다. 폴을 수행하는 악어들(저스틴 하비, 권혁 분)이 그들로 미국의 방식은 뇌에 직접 약물을 투입하는데 반해 한국이 개발한 폭군은 바이러스 유형으로 피부나 점막 감염 형태로 탈인간급 개체를 만들어낸다.
이 폭군의 회수가 폴의 임무. 폴은 미국의 영광을 위해 동업자인 한국 측 요원들을 거침없이 삭제해 가며 최국장을 압박해 간다.
드라마의 설정을 보면 사건은 최국장 쪽 ‘폭군 프로젝트’가 ‘헤드 원’에 적발되면서 시작된다. 실무자인 요네스 박사는 단 하나의 샘플만을 남겨 입국한다. 최국장은 내처진 요원 연모용으로 하여금 이 샘플을 회수하도록 지시하고 연모용은 양부의 죽음으로 국내 최고의 금손이 된 최자경을 섭외한다. 연모용은 상황종료 후 최자경을 살인멸구 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최자경은 연모용을 추적한다.
폴의 헤드 원 팀이 추적에 나서자 최국장은 청소부 임상을 고용해 폭군 프로젝트의 흔적을 지워나간다. 그리고 최국장의 안가에서 마주친 4명의 악인.
159분 액션물에서 주요 캐릭터들의 서사까지 주저리주저리 읊을 이유는 없다. 설정-전개-결말 정도만 완결돼도 준수하다. 그런데 문제는 설정부터 몹시 헷갈린다는 점이다.
폭군 프로젝트를 완성한 요네스 힐름 박사는 최국장 팀이 노교수를 통해 캐스팅한 인물, 즉 최국장 편이다. 헌데 드라마 초반 이 인물의 죽음은 최자경이 포함된, 최국장의 명을 받은 연모용 팀의 소행이다. 이때 최자경은 폭군프로젝트의 유일한 샘플을 취득한다.
이 상황만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헤드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흔적을 말살하는 중이었으니 최국장이라면 충분히 샘플만 확보하고 개발자 요네스 박사까지 제거하려 했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연모용팀이 움직인 이유가 관여사(장영남 분)가 최국장에게 마지막으로 제공한 정보 때문이란 점이다. 그리고 그 정보란 것이 헤드원 재팬의 스웨덴제 비밀 금고 수송 작전에 대한 것이고 이 난이도 높은 금고 해제를 위해 채자경이 필요했던 셈이다.
말인즉슨 폴의 헤드원 재팬은 이미 샘플과 요네스 박사를 확보해 무슨 이유에선지 국내로 들여왔고 그 정보를 입수한 최국장이 최자경과 연모용 팀을 움직여 탈취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럴 경우 요네스로선 인질범들이 사살되고 자신은 구조될 것을 기대해야 마땅하지 않나? 헌데 요네스는 절망에 빠져 권총을 난사하다 사살당한다.
또 관여사가 제공한 입항 정보로 미루어 프로젝트는 해외에서 추진됐다. 헤드원 재팬은 왜 프로젝트 추진자 최국장이 버티고 있는 한국으로 들여오려 했을까? 그래서 뺏겨놓고 징징거리는 이유는 뭔가? 여기에 더해 유일한 샘플은 최자경이 확보했다. 헌데 이름모를 농촌에서 감염체가 나타났으니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
피부와 점막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의 특성으로 볼 때 햇빛에 폭파한 감염체의 피를 뒤집어 쓴 농부는 그저 발병이 더뎠을 뿐인가? 그 농부를 사살한 임상은 그냥 수돗물에 피묻은 손을 씻는 것만으로 감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스피디한 전개, 화려한 액션, 개성있는 연기로 159분을 흥미진진하게 소화는 했어도 미진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