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하고 묵직한 미스테리물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반갑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4.08.18 12: 44

[OSEN=김재동 객원기자] 무천시는 11월이었다. 한국대학교 의과대학에 수시합격한 터라 수능이 끝났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다만 시험 망친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술파티를 계획했다. 부모님은 하와이 여행을 떠나 마침 집이 비었다는 사실도 한 몫 했다.
기껏해야 모여 술이나 마시는 일이지만 음주의 자유가 생겼다는, 어쩐지 어른이 된 듯한 기분 탓에 설레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 설렘과 기대는 함께 장을 보기로 했던 여자친구의 무응답으로 차갑게 식어갔다.
게다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듯 죽상인 다른 친구 입에서 여자 친구가 걸레란 험담까지 들었던 터라 기분이 잡쳐버렸다. 술파티를 취소하고 혼자서만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강제로 깨워진 다음 날 친구 두 명을 죽인 살인자가 되어있었다.

MBC 새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극본 서주연, 연출 변영주)은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Nele Neuhaus)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Snow White Must Die)’을 원작으로 한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청년이 10년 후 그날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담은 역추적 범죄 스릴러다.
드라마는 시신없는 두 피해자 심보영(장하은 분)과 박다은(한소은 분)으로부터 시작된다.
심보영은 쌓여있는 짚단을 배경으로 술에 취한 듯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엄마의 음성메시지를 청취하고 있다. “어디니? 왜 전화 안받아. 엄마가 다 말해줄테니까 전화 좀 받아. 집에서 엄마랑 얘기 좀 해 보영아.” 다음 장면은 겁에 질린 채 주춤주춤 등을 밀어 물러서는 모습.
박다은은 같은 장소지만 시차는 있는 듯 할머니와 직접 통화하고 있다. “마을창고에서 조금만 놀다 갈거야”는 다은은 “창고? 누구랑 같이 있는데? 너 그 집 아들이랑 사귄다드니 이렇게 늦게까지 같이 있으면..”이라 걱정하는 할머니의 말을 끊고 “아, 알았어. 들어가서 전화할게”라 말한 직후 비명성을 올린다. 늘어진 비닐 위로 흩뿌려지는 선혈.
고정우(변요한 분)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 이유는 현장에 있던 고정우의 차, 그리고 피해자들의 혈흔과 지문이 묻어있는 신발. 사라진 피해자들은 현장에 3리터 이상의 혈액을 남김으로써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당시 행동을 기억 못하는 고정우의 블랙아웃 상태에 대해서도 범죄행동분석팀은 술이 만취해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다음엔 자기 안의 강력한 방어기제가 작동하면서 필름이 끊긴 상태가 되어 자기 행동을 기억못한다고 진단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믿어주던 아버지 고창수(안내상 분)는 뇌출혈로 사망했고 죄인 아들을 둔 엄마 정금희(김미경 분)는 이제는 남의 가게가 된 무천가든의 주방 이모로 계속 남아 동네 사람들의 욕받이를 자처하는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차에 출소한 고정우의 귀향. 옛 이웃들의 적의 어린 시선에 더해 엄마 정금희의 간곡한 당부에 따라 정우는 무천을 떠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런 정우를 무천에 묶어두는 사건이 발생한다. 엄마 정금희의 육교 추락. 정우는 의식불명에 빠진 정금희를 떠날 수 없고 사건의 범인도 밝혀낼 결심을 한다.
한편 서울 광수대의 에이스였지만 참고인 폭행으로 무천시로 좌천된 노상철(고준 분) 경감은 정금희 추락사건에 흥미를 보인다.
피해자가 10년 전 시신없는 살인사건 범인의 친모였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이 함께 살다 범인이 출소한 후 그 엄마가 추락을 당했다. 고정우에게 적의를 가진 마을 사람 모두가 범인일 수 있다.
범죄자에게 결혼식 날 아내를 잃은 노상철로서는 피해자인척 사건 수사를 당부하는 고정우가 혐오스럽지만 서장인 현구탁(권해효 분)까지를 포함, 모두가 얽히고 설켜 있는 무천시의 상황이 흥미롭기만 하다.
그리고 산책길 개가 물어온 인골 한 조각. 의대를 휴학 중인 무천가든 알바생 하설(김보라 분)은 그 뼈가 인골임을 알아보고 경찰에 제출하고 정우는 비상한 결심을 하고 사라진 친구의 사체 행방 찾기에 나선다.
드라마의 키맨으로는 자폐증세가 있는 현구탁 서장의 아들 현수오(이가섭 분)가 부각됐다. 현수오는 10년 전 증언하던 사건 당시보다 증세가 한결 심해진 모습으로 등장, 사건 현장을 그린 그림을 그리며 당시의 목격자 같은 뉘앙스를 전해줬다. 수오의 그림엔 여자의 목을 움켜쥐고 소리치는 남자와 뒤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담겨있었다.
만약 수오가 목격자라면, 사건 당시 친구를 위한 증언을 제대로 할 수 없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 죄책감으로 인해 상태가 더 나빠졌을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보영을 낙담시켜 밖으로 내 몬, 그래서 결국 비극을 맞게 했던, 보영엄마 이재희(박미현 분)가 보영에게 다 말해주겠다고 애원한 사연은 무엇일 지도 궁금하고 다은 방에서 정우가 발견한 고가의 옷으로 미루어 짐작 가능한 다은의 원조교제 상대는 누구일 지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베스트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구성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오랜만에 만나는 묵직한 미스테리물이라서 많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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