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가을야구를 넘보고 있다. 매년 이맘때 순위 싸움에서 멀찍이 떨어졌던 팀이 지금까지 밀리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 돌아온 에이스 류현진(37) 효과를 빼곤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한화는 지난 16~18일 문학 SSG전을 싹쓸이 3연승하며 5강 불씨를 제대로 살렸다. 지난달 23일 대전 삼성전부터 최근 20경기 14승6패, 승률 7할로 질주하며 52승59패2무(승률 .468)를 마크한 7위 한화는 5위 SSG(56승58패1무 승률 .491)와 격차를 2.5경기로 좁혔다. 6위 KT(55승59패2무 승률 .482)에도 1.5경기 차이로 따라붙었다.
정규시즌 113경기를 소화한 시점까지 가을야구를 경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화에는 낯선 일이다. 마지막 포스트시즌 진출 해였던 2018년 이후 한화는 매년 이 시기 하위권에 떨어져 순위 싸움의 구경꾼 노릇만 했다.
113경기 기준으로 2019~2023년 5년간 한화 순위는 10-10-10-10-9위였다.
2019년은 43승70패(승률 .381)로 5위 NC에 13경기 차이로 뒤졌다. 18연패 충격에 빠졌던 2020년에는 33승78패2무(승률 .297)로 5위 두산에 무려 27경기 뒤진 10위였다. 2021년에도 40승65패8무(승률 .381)로 5위 키움에 13.5경기를 밀렸고, 2022년 역시 35승76패2무(승률 .315)로 5위 KIA에 20.5경기 차이로 순위 싸움에서 멀어져 있었다.
지난해에도 45승62패6무(승률 .421)로 5위 KIA와 12경기 차이였다. 오히려 10위 키움에 2경기 차이로 쫓기는 신세로 탈꼴찌 싸움을 하며 다음 시즌 준비에 포커스를 맞췄다.
매년 여름은 한화의 힘이 빠지는 시기였다. 선수층이 두껍지 못하고, 주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체력이 지치는 여름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8월 월간 성적을 보면 2019년 8위, 2020년 10위, 2021년 6위, 2022년 공동 9위, 지난해 10위로 더위에 맥을 못 췄다.
하지만 올해는 8월 15경기 9승6패(승률 .600)로 3위에 오르며 여름에 힘을 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외부 FA를 영입하고, 경험치를 먹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어우러져 뎁스를 키운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5년과 가장 큰 차이는 확실한 에이스의 존재, 메이저리그에서 12년 만에 돌아온 류현진이 있다. 지난 18일 문학 SSG전을 6⅓이닝 6피안타 1볼넷 8탈삼진 1실점 호투로 승리한 류현진은 올해 23경기에서 131⅓이닝을 던지며 7승7패 평균자책점 3.97 탈삼진 113개를 기록 중이다. 전성기에 비해 기복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한화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에이스다.
팀 내 유일한 규정이닝 투수로 최다 이닝을 던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화에 큰 힘이다. 한화는 올해 외국인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 김민우의 팔꿈치 수술에 따른 시즌 아웃, 문동주·황준서·김기중 등 영건들의 성장통으로 선발진이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 류현진이 엔트리 말소 없이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지켜준 것이 마운드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류현진이 나온 23경기에서 한화는 12승10패1무(승률 .545)를 기록, 그가 나오지 않은 날 승률(.449)보다 1할 가까이 높다.
류현진이 선발진을 떠받치는 가운데 불펜은 김서현의 성장과 박상원, 한승혁, 주현상이 확실한 필승조를 구축했다. 야수 쪽에선 2년간 FA 영입한 채은성과 안치홍을 중심으로 김태연, 이도윤, 장진혁 등 한화 자체 육성으로 키운 선수들이 주축으로 성장하며 힘이 붙었다.
시즌 중 부임한 김경문 한화 감독도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믿음을 주고, 경쟁을 유도하면서 선수들의 동기 부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경기의 맥을 짚고 승부처라고 판단된 순간 확실하게 밀어붙이는 용병술도 명장답다. 김경문 감독 부임 후 한화는 28승27패1무(승률 .509)로 같은 기간 4위에 올라있다.
한화는 이번 주 청주 NC전, 잠실 두산전이 예정돼 있다. 창단 후 최다 10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진 NC를 상대로 좋은 무드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 문동주가 20일 NC와의 3연전 첫 경기 선발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