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레드삭스의 한국계 외야수 롭 레프스나이더(33)가 올 시즌 끝으로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최고 시즌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의외다.
미국 ‘보스턴 글로브’는 지난 18일 레프스나이더가 올 시즌을 마친 뒤 현역 은퇴를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레프스나이더는 “내년 복귀는 미정이다. 보스턴에 올 때부터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레프스나이더는 2021년 12월 마이너리그 계약으로 보스턴에 합류했고, 올해로 3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레프스나이더는 “시즌이 끝난 뒤 차근차근 내가 무엇을 할지 결정할 것이다.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일정도 쉬워질 것이다”고 말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레프스나이더는 장기적으로 프런트 오피스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한다.
우투우타 외야수 레프스나이더는 한국의 피가 흐르는 한국계다.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난 뒤 생후 5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돼 독일·아일랜드계 부부 밑에서 자란 레프스나이더는 올 시즌 75경기에서 타율 2할9푼8리(225타수 67안타) 8홈런 26타점 28득점 26볼넷 62삼진 출루율 .381 장타율 .480 OPS .861로 활약 중이다. 데뷔 후 개인 최다 안타, 홈런을 치고 있다.
풀타임 주전은 아니지만 좌투수에 강한 장점을 살려 꾸준히 주전급 출장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좌투수 상대 타율 3할4리(102타수 31안타) 6홈런 17타점 OPS .942로 확실히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지난해 89경기를 넘어 개인 최다 출장 시즌도 가능하다.
커리어 하이 시즌이고, 나이도 아직 33세로 아주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레프스나이더는 2015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뉴욕 양키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탬파베이 레이스, 텍사스 레인저스, 미네소타 트윈스 등을 거치며 보스턴에 오기 전까지 그야말로 떠돌이 생활을 했다. 보스턴에 와서 주전급 백업으로 자리잡아 정착했지만 10년 넘는 선수 생활에 꽤 지친 모습이다.
하지만 보스턴 입장에선 레프스나이더를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지난해 6월 보스턴은 레프스나이더와 1+1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연봉 185만 달러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2025년 200만 달러 구단 옵션을 붙였다. 구단이 옵션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15만 달러 바이아웃 금액이 발생한다.
올 시즌 성적이라면 보스턴이 레프스나이더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실력도 좋지만 베테랑으로서 젊은 선수들이 많은 보스턴 클럽하우스 리더십도 인정받고 있어 팀 내 평가가 좋다. 알렉스 코라 보스턴 감독도 “레프스나이더는 연습 벌레이고, 우리 팀 리더 중 한 명이다”며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만약 레프스나이더가 시즌 후 은퇴를 결정한다면 바이아웃 금액을 빼고 185만 달러의 금전적 손실이 생기게 된다. 우리 돈으로 약 25억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 돈을 포기하는 게 보통 선수라면 쉽지 않다. 커리어 내내 큰돈을 벌지 못했던 레프스나이더라는 점에서 진짜 은퇴를 한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은퇴 여부는 시즌이 끝난 뒤 일이다. 레프스나이더는 남은 시즌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보스턴에서 포스트시즌 경험을 꼭 하고 싶다”고 의지 다졌다. 65승58패(승률 .528)로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 3위이자 와일드카드 4위에 올라있는 보스턴은 3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3.5경기 차이로 뒤져있다.
남은 39경기에서 뒤집기 쉬운 차이는 아니지만 아직 포기할 때도 아니다. 19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보스턴은 2-4로 패했지만 레프스나이더는 7회말 대수비로 교체 출장, 9회초 추격의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