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타디움 앞에서 무려 2만여 명의 팬들이 길게 줄지어 섰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에 경기 전 출근을 하던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저스 구단은 지난 2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홈경기를 ‘오타니-디코이 버블헤드 데이’로 준비했다. 오타니가 자신의 반려견 디코이를 품에 안고 있는 모양의 인형을 선착순 4만명에게 무료 증정하는 날. 그 중에서 약 2000개는 황금색으로 제작된 ‘골드 에디션’ 한정판이었다.
‘희귀템’을 받기 위한 팬들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이른 시각부터 다저스타디움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MLB.com’에 따르면 새벽 5시부터 다저스타디움 앞에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녁 7시10분이 경기 개시 시간이었지만, 4시간 전부터 무려 2만여 명의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
그 시각 다저스타디움에 출근하던 오타니도 이 광경을 보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경기 후 오타니는 “가족과 함께 구장에 왔을 때 나도 깜짝 놀랐다.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뭔가 다른 이벤트를 하는 줄 알았다”며 자신 때문에 긴 줄이 생긴 줄도 모르고 있었다.
5만3290명의 대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경기 전 오타니와 함께 버블헤더 데이 주인공인 반려견 디코이가 ‘시구견’으로 나서 화제가 됐다. 오타니는 자신의 품에서 디코이를 마운드에 내려놓고 혼자 홈플레이트 뒤쪽 포수 자리에 앉았다. 오타니의 사인을 받은 디코이가 마운드에 놓여진 공을 입에 물고 오타니에게 달려가 전달했다.
이어 앞발로 오타니의 손을 터치한 디코이는 관중들의 탄성과 웃음을 자아내며 큰 환호를 받았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도 “반려견이 그렇게 훈련돼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오타니의 반려견이라면 놀랄 일이 아니다”며 웃었다.
경기에 들어가서도 주인공은 오타니였다. 1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한 오타니는 1회말 첫 타석부터 볼티모어 선발투수 코빈 번스 상대로 선두타자 홈런을 때렸다. 5구째 시속 87.4마일(140.7km) 바깥쪽 슬라이더를 받아쳐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타구 속도 시속 102.2마일(164.5km), 비거리 391피트(119.2m), 발사각 33도 측정된 시즌 42호 홈런.
3회말 1사 1루 두 번째 타석에선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가며 1,2루 찬스를 연결했다. 무키 베츠의 중전 적시타로 2루에 진루한 오타니는 3루까지 훔쳤다. 1루 주자 베츠와 함께 더블 스틸로 시즌 41호 도루. 계속된 2사 2,3루에서 테오스카 에르난데스가 5-3으로 스코어를 뒤집는 스리런 홈런을 쳤고, 오타니가 득점을 올렸다.
5회말에는 무사 1루에서 1루 땅볼을 치며 선행 주자가 2루에서 포스 아웃됐다. 하지만 1루 주자로 나간 오타니는 2루 도루에 성공했다. 시즌 42호 도루이자 8번째 멀티 도루 경기. 상대 포수 제임스 맥캔의 실책이 나온 사이 3루까지 내달린 오타니는 개빈 럭스의 땅볼 때 상대 유격수 거너 헨더슨의 포구 실책으로 홈을 밟고 추가 득점까지 올렸다.
오타니가 4타수 2안타 1타점 3득점으로 활약한 데 힘입어 다저스도 6-4 재역전승을 거뒀다. 79승54패(승률 .594)가 된 다저스는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1위를 굳건히 했다.
자신과 반려견의 버블헤더 데이를 맞아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오타니는 “정말 특별한 밤이다. 디코이에게 특별한 간식을 사주고 싶다”며 시구에 대해선 “내가 타석에 설 때보다 긴장했다. 2~3주간 연습했는데 구장에 와서도 한 번 했다. 대단했다”며 기뻐했다.
로버츠 감독도 “오타니의 활약이 꽤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버블헤드 날을 맞아서 홈런을 치고, 도루도 2개나 했다.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자리를 더욱 뜨겁게 만든다”며 오타니의 스타 기질을 치켜세웠다.
이날까지 오타니는 시즌 130경기 타율 2할9푼5리(515타수 152안타) 42홈런 95타점 104득점 69볼넷 131삼진 42도루 출루율 .380 장타율 .619 OPS .999를 기록 중이다. NL 홈런·득점·장타율·OPS 1위, 타점·도루 2위, 안타·볼넷 3위, 출루율 4위, 타율 5위에 오르며 MVP 1순위로 입지를 굳혔다.
2021년, 2023년 LA 에인절스에서 두 차례 아메리칸리그(AL) MVP를 받았던 오타니는 프랭크 로빈슨 이후 역대 두 번째 양대리그 MVP 수상도 유력하다. 통산 586홈런을 기록한 거포 우타 외야수 출신 로빈슨은 1961년 신시내티 레즈 소속으로 NL MVP를 먼저 받았고, 1966년 볼티모어 이적 첫 해 AL에서 MVP를 차지하며 유일한 양대리그 MVP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