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됐어요. 울보도 좋습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우완 투수 이상규(28)는 지난달 31일 대전 KT전을 앞두고 팬들로부터 커피 선물을 받았다. 100잔이 넘는 캔 커피가 선수단에 전달됐다. 캔에는 지난달 24일 잠실 두산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방송 인터뷰를 하는 이상규의 사진과 함께 ‘1553일 만의 승리, 오늘은 상규가 쏩니다’라는 문구가 붙여져 있었다. 이상규는 “팬분들이 해주신 것이다. 이런 선물은 처음이다. 굉장히 기분 좋다”며 웃었다.
그날의 감격이 많은 야구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난달 24일 두산전에 이상규는 6-6 동점으로 맞선 9회말 무사 1루에서 구원등판했다. 마무리 주현상이 2일 연투로 등판 불가 상태에서 이상규가 10회말까지 2이닝을 책임졌다. 고의4구 하나가 있었을 뿐 2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한화의 7-6 승리와 함께 이적 첫 승을 신고했다.
LG 시절이었던 2020년 5월24일 잠실 KT전 이후 4년 만의 승리였다. 수훈 선수로 방송 인터뷰에 나선 이상규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눈물을 펑펑 쏟았다. 지난해 LG에서 육성선수로 신분이 강등되고, 2차 드래프트로 팀을 옮기는 등 시련이 떠올라 감정이 북받쳤다.
이상규는 “그날 이후 그냥 울보가 됐다. 울보도 좋다”며 웃은 뒤 “울려고 한 것은 아니다. 평소 눈물이 없는데 감성적이긴 하다. ‘이런 순간이 나한테도 올까’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왔다. ‘나도 할 수 있구나, 이뤄낼 수 있구나’ 그런 생각에 눈물이 났다. 기쁨의 눈물이었다”고 돌아봤다.
2019년 1군에 데뷔한 이상규는 2020년 시즌 초반 고우석의 부상 때 LG의 임시 마무리를 맡아 세이브를 4개 올렸다. 그러나 이후 뚜렷한 성적을 남기지 못했고, 2023년 시즌 종료 후 육성 선수로 신분이 전환되기도 했다. 5월 중순 정식 선수로 등록돼 1군에 올라왔지만 이상규에겐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는 “육성선수로 전환이 되면서 슬슬 후배들한테 뒤처지는 것이 느껴졌다. 1군에 올라갈 수 있는 순번이 늦어지는구나 싶었다. 야구를 하고 싶어도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2차 드래프트로 한화에 오면서 전보다 기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다 보니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한화는 지난해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LG에 4억원을 주고 이상규를 지명했다. 2차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선수는 50일 이상 1군 엔트리에 의무 등록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2년 내로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원소속팀으로 복귀하거나 FA로 풀린다.
시즌 초반에는 생각보다 기회가 많이 오지 않았다. 4월 중순과 6월초 1군 엔트리에 등록되고도 등판 없이 2군에 내려갔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 부임 후 6월21일 광주 KIA전에서 시즌 첫 1군 등판을 가졌다. 2경기 만에 다시 2군으로 이동했지만 김경문 감독이 직접 이상규를 불러 “필승조로 올라가기 위해선 변화를 줘야 할 것 같다. 세트 포지션을 바꿔 오는 게 좋겠다”며 필요한 부분을 명확하게 짚어줬다.
8월 1군 복귀 후에는 필승조급 투구를 하고 있다. 11경기에서 13⅔이닝 동안 삼진 13개를 잡으며 평균자책점 2.63으로 막고 있다. 피안타율 2할대(.204)로 낮다. 눈물의 승리를 거둔 24일 두산전에 이어 28~29일 사직 롯데전에도 각각 1이닝 무실점, 1⅔이닝 무실점으로 좋은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PTS 기준 최고 시속 148km 직구에 커터성 슬라이더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상규는 “전반기 막판 2군에 가기 전 감독님께서 세트 포지션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셔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했다”며 “감독님과 코치님이 믿고 기회를 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지난달 13일 대전 LG전) 결과가 좋지 않아 좌절도 했지만 감독님, 코치님이 괜찮다고 말씀해주셔서 한 번 더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코칭스태프에 고마움을 표했다.
양상문 투수코치와도 LG 때부터 인연이 있다. 이상규가 2015년 LG에 입단할 때 사령탑이 양상문 코치였다. 이상규는 “LG 시절 양상문 코치님과 그렇게 깊은 건 없었지만 (2군에서) 내가 던질 때 오셔서 좋다고 말씀해주신 기억이 난다”며 “지금도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멘탈과 마인드를 우선적으로 강조하신다. ‘지금 너한테 잘못된 건 없다’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다”고 말했다.
그날의 눈물 이후로 이상규는 ‘간절함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롯데전에선 투수 옆 타구에 몸을 날려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기도 했다. “야수 출신이라서 다 잡을 수 있다는 마인드로 한다. 못 잡아서 창피했다”며 웃은 이상규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간절하다. 간절하게 안 하는 선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결과는) 실력보다 운이 따른 것 같은데 이제 지속성을 갖고 꾸준함을 유지해야 한다. 아프지 않고 시즌 끝까지 잘 마무리해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