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조금 쉬어가는 해가 될 줄 알았다. 데뷔 후 누구보다 많은 이닝을 던졌고, 지난해 1년간 무려 3번의 국제대회로 피로감이 쌓였다. ‘안식년’이 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아니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 원태인(23)이 다승 단독 1위에 등극하며 강력한 내구성과 꾸준함을 자랑하고 있다.
원태인은 지난 8일 대구 NC전에서 5⅔이닝 6피안타 2볼넷 7탈삼진 2실점 호투로 삼성의 10-2 완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 개인 최다 111구를 던지면서 투혼을 불살랐다. 트랙맨 기준 최고 시속 151km 직구(55개) 중심으로 체인지업(26개), 슬라이더(18개), 커터(9개), 커브(3개)를 고르게 구사했다.
강력한 힘이 느껴진 투구였다. 삼진 7개 중 5개의 결정구가 직구일 정도로 힘이 있었다. 홈런 1위(42개)를 달리고 있는 NC 외국인 거포 맷 데이비슨도 3회와 5회 두 번이나 원태인의 직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3회 몸쪽 깊게 들어온 날카로운 하이 패스트볼에 체크 스윙을 하다 돌았고, 5회에는 한가운데 직구에 헛스윙했다. 4회 2사 1,2루에서도 원태인은 김형준을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포효했다.
이날 승리로 시즌 14승(6패)째를 거둔 원태인은 NC 카일 하트(13승)를 제치고 다승 단독 1위로 올라섰다. 지난 2021년 14승에 이어 개인 최다승 타이 기록. 삼성의 시즌이 12경기가 더 남아있고, 원태인은 3경기 정도 추가 선발등판이 예상된다. 데뷔 첫 15승이 유력하며 욕심을 내면 17승까지도 가능하다.
올 시즌 원태인의 전체 성적은 26경기(149⅔이닝) 14승6패 평균자책점 3.55 탈삼진 112개 WHIP 1.18 피안타율 2할3푼9리. 다승 1위, WHIP 5위, 평균자책점·피안타율 6위, 이닝 10위에 올라있다. 국내 투수 기준으로는 다승·평균자책점·WHIP 1위, 피안타율 2위, 이닝 4위에 빛난다. 국내 투수 중 최고 성적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엄청난 피로 누적을 딛고 거둔 성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원태인은 지난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이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11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까지 시즌 전부터 중간, 종료 후까지 쉴 새 없이 대표팀에 차출됐다. 1년에 3개의 국제대회에서 모두 공을 던진 투수는 원태인이 처음이었다.
정규시즌 26경기 150이닝뿐만 아니라 국제대회 6경기(4선발) 19⅓이닝까지 1년간 총 169⅓이닝을 던졌다. 단순 이닝뿐만 아니라 국제대회 준비를 위해 남들보다 빨리 시즌을 빨리 준비하고, 늦게 마친 점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피로도. 지난해 APBC 때 원태인은 “1년 내내 야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시즌이 정말 길기도 길었고, 많이 힘들기도 하다”며 “휴식에 중점을 두고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예년보다 투구 페이스를 늦추며 조심스럽게 준비했다. 지난 6월 중순에는 어깨 피로 누적으로 관리 차원에서 1군 엔트리에 빠져 관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2일 만에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왔고, 쉼없이 던지면서 4년 연속 규정이닝을 돌파했다.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으면 4년 연속 150이닝을 달성한다.
요즘처럼 젊은 투수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져 과보호하는 시대에 원태인 같은 투수는 정말 보기 드물다. 25세 이하 나이에 4년 연속으로 150이닝 이상 던진 투수는 2006~2010년 한화 류현진(18~23세), 2006~2009년 롯데 장원준(21~24세), 2003~2005년 삼성 배영수(22~25세) 등이 있었다.
원태인은 2019년 데뷔 후 6시즌 통산 158경기(151선발)에서 875⅔이닝을 소화 중이다. 2019년 이후 그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지난 7월 LG를 떠난 케이시 켈리(989⅓이닝)가 유일하다. 국내 투수 중에서 최다 이닝으로 커리어 내내 큰 부상 없이 단단한 내구성과 꾸준함을 보이고 있다. 안식년이 될 줄 알았던 올해도 다승왕 타이틀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