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이 ‘베테랑2’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시즌3 제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11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영화 ‘베테랑2’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베테랑2’는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 베테랑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 분)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액션범죄수사극. 지난 2015년 개봉해 1300만관객을 동원하고 큰 흥행을 거둔 ‘베테랑’의 후속작이다.
그간 류승완 감독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꾸준히 영화팬들의 ‘속편’ 요구가 빗발쳤다. 이 가운데 류승완 감독이 처음으로 선보인 속편의 주인공은 그에게 가장 큰 스코어를 안겨준 ‘베테랑’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사실 저는 속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제가 속편을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마치 속편을 예고하는것 같은 ‘베를린’도 현장에서 배우들과 얘기는 했으나 스스로 ‘과연 이게 속편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근데 ‘베테랑’같은 경우는 모든것이 자연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과의 호흡도 그렇고 저 스스로가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한 애정도. 이를테면 요즘 많이 얘기하는 세계관이라는 표현도 있지 않나.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거대하고 긴 시간을 다룬다거나, 어떤 사건들이 연쇄 작용을 이뤄서 이어져가는 이야기라서 시리즈가 요구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인물 자체의 매력도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게 해주는 경우가 있다. ‘베테랑’은 후자라 생각한다. 서도철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았다. 많은 시리즈가 주인공의 매력의 힘으로 간다. ‘베테랑’은 개봉하기 전에 이미 현장에서 만든 사람들 모두가 애정도가 깊어져서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둔다면 속편을 꼭 만들자고 얘기했다. 언론 시사회 후에도 옷을 가장 먼저 의상부에 보관하고 ‘우리는 꼭 속편 만들거야’라고 했는데 그게 9년이나 걸릴지 몰랐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렇다면 속편이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 9년이나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 1편이 원래 시작할 때 요즘 소위 말하는 ‘텐트폴 영화’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중급 규모의 영화였고 1편 제작할때도 말을 많이 들었다. 마지막 카체이서 장면에서도 망가진 차를 어떻게든 살려서 찍고 그랬다. 개봉일정도 계속 밀렸을 정도로 배급사에서 확 미는 1번타자가 아니었다. 근데 그게 그때 당시 사회 분위기랑 맞물려서 너무 큰 성공을 거뒀다. 손익분기를 넘겨서 저희 목표는 ‘400만이면 대성공이다’ 했는데 3배가 넘는 흥행 스코어를 거두니까 좋기도 하면서 불안해지기도 했다. 겁도 나고. 그러다 보니 중압감이 1차적으로 생겼다. 그 전에 생각해둔 스토리가 있었는데 그걸 못하겠더라.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사이에 소위 ‘사이다’ 장르라는 게 나왔지 않나. 저도 즐겨본다. 그런데 통쾌해 하면서도 ‘과연 이게 맞나?’ 하고 스스로를 자꾸 보게 됐다. ‘베테랑1’은 저를 분노하게 했던 사건 몇가지가 모티브가 돼서 저를 달려가게 했다. 영화 안에서 복수의 쾌감을 이뤄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어떤 사건들에 대해 분노해서 비난하고 심지어 그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 대해 살의를 느꼈는데, 어떤 경우는 좀 지나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경우가 생기더라. 거기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강도가 내 안에서 내적으로 비난을 일으켰던 감정의 강도보다 약해진 걸 느꼈다. 오히려 ‘내가 분노했던게 맞아’ 하고 분노했던 자신을 방어하는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봤을때 섬찟하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9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일으키는 분노는 옳은가?”, “스스로 정의라고 생각한것은 옳은 정의인가”라는 생각들이 쌓여갔다고.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1’ 같은 방식이 쉽게 가려운곳을 긁어주니까 좋긴 한데 어쩌면 이건 잘못된 처방일수 있지 않을까.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콜라, 사이다를 계속 마시다가 위를 버리는 경우가 있지 않나. 저도 1편이 왜 성공한지 알고 대중들도 속편이 나온다면 어떤걸 기대할지 아는데,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스스로가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고 혼란에 빠져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가는게 힘들었다. 사실 황정민 선배님은 처음 이 방향을 들었을 때 ‘왜 이렇게 힘든길을 가려고 해?’라고 했다. 제가 ‘더 나이들기 전에 한 번만 해 보자’, ‘우리가 언제 이런 거 해 보겠냐’고 했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생각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런 메시지를 다른 새로운 영화가 아닌 ‘베테랑2’로 풀어낸 이유를 묻자 류승완 감독은 “이 방향을 틀면서 빌런의 사연이나 비하인드를 배우한테도 다 얘기하지 않았다. 일종의 재난을 경험하는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겪는 많은 일 중에 억울한 일이 매일 벌어진다. 삶에서 나를 위협하는 어떤 것들을 악이라 생각하는데 악의 실체를 과연 한마디로 규정할수 있는가. 그게 더 무섭다. 맞닿을수 없고, 해결할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와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간다고 할 때 저는 ‘베테랑’ 서도철과 함께하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예 새로운 판으로 들어가서 이런 대상을 상대로 뭔가를 벌린다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적어도 그를 상대하는 주인공이 내가 알고있는 인물이라면 훨씬 더 빠른 방식으로 이야기에 몰입해서 든든하게 체험할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반대로 얘기해서 손에 잡기 쉽고 누가 봐도 쉽게 분노하고 판단 내릴수있는 악을 처단하는건 ‘베테랑’이 아니어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렵기때문에 이걸 명쾌하고 선명한 주인공과 함께 하는게 전략적으로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베테랑2’에는 황정민을 비롯해 시즌1에서 함께했던 형사팀들이 다시 의기투합해 특별함을 더했다. 류승완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 시리즈가 ‘리썰 웨폰’이다. 4편이 끝나고 크래딧에 1편부터 함께한 크루들의 사진이 나온다. 그 중에 늙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저는 그게 감동적이더라. 영화 공동체 안에서 시리즈를 만들면서 자신의 인생들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그 어떤 위대한 영화 엔딩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제가 시리즈를 만든다면 가급적이면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의 변화가 최소화되는 상태였으면 했다.어쩔수 없는 변화는 생기겠지만, ‘베테랑’ 같은 경우 최소한 전작의 구성팀원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는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김시후 배우는 연기를 그만두려고 잠깐 떠나기도 했다. ‘베테랑’을 다시한다고 하니 너무 흔쾌히, 마치 ‘어머 이건 해야지’ 이런 느낌으로 응했다. 생각해보면 서운하다 싶을정도로 기뻐하는 기색도 없고 ‘당연히 하는거 아냐?’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특히 ‘베테랑2’에는 각종 범죄를 파헤침과 동시에 구독자들에게 후원금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뉴스를 생산해내는 ‘정의부장’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최근 카라큘라와 같은 렉카 유튜버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류승완 감독은 “영화 완성하고 후반작업도 다 끝나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1편 시사회때도 땅콩회항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럴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고 묘하다. 근본적으로 이름만 바뀌고 소재가 바뀌는것 뿐이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항상 ‘왜 저런일들을 저지르며 살아갈까’ 싶은 사람들은 계속 있다. 이를테면 최근의 딥페이크 범죄 같은것들처럼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들은 사회의 환경,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가면을 바꿔쓸 뿐이지 꾸준히 벌어진다. 영화를 만들 때 항상 그런 사회 변화의 속도에 맞춰서 예측하면서 하려다 보니 우연찮게 그런 게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베테랑’처럼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달려가는 장르의 영화를 만들다 보면 그런 일들을 겪게 된다. 그럴때마다 만든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설명할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든다. 심지어 과거 다룬 영화인데 ‘모가디슈’를 개봉할 때는 아프칸 사태가 벌어졌지 않냐. 역사가 반복된다는 표현을 쓰는데 긴 역사가 아닌 짧은 역사도 반복되는 느낌이다. 악을 응징하는 통쾌한 사이다 방식보다 ‘악을 대하는 방식을 단선적으로 보는게 맞을까요?’ 하는 질문을 같이 하고싶은 데에는 그런 것도 작용한 것 같다. 우리가 분노하고 응징을 원하고 소비했는데 ‘그럼 우리는 그만큼 많이 좋아진건가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든다”고 깊은 고민을 전했다.
‘베테랑’에 조태오가 있다면, ‘베테랑2’에는 ‘해치’가 있다. 작중 정해인은 강수대에 새롭게 합류한 신입형사 박선우이자 연쇄살인마 해치 두 얼굴을 연기했다. 이에 정해인은 인터뷰에서 “존재만으로 불쾌함을 줬으면 좋겠다”는 류승완 감독의 디렉팅을 전했던 바. 이와 관련해 류승완 감독은 “제가 처음 정해인 배우하고 인사한게 ‘시동’ 촬영장이었다. 마치 세상 큰 어른 만나듯이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얘기하더라. 저는 박정민 배우하고는 단편을 같이 찍어봐서 편하니까 농담하는데 옆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서서 미소지으면서 있더라. 어떻게 이렇게 인간이 재수없을수 있는가. 어떻게 이럴수 있는가. 짝다리도 안 짚고. ‘뭐지 이 재수없는 젊은이는?’ 이랬다. 현장에서도 그렇고 그렇게 흐트러짐 없기가 쉽지 않은데 ‘저렇게 살아가는 인간은 얼마나 힘들까. 안에 스트레스가 분명 있을텐데’라고 생각했다”고 첫인상을 전했다.
이어 “‘베테랑2’를 제안하려고 각본 전달하기 전에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데, 술 한잔 하면서 ‘흐트러질수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싶었다. 그런데 안 흐트러진다. 대화 해보면 화가 있다. 자기가 정직하게 살려고 하고, 항상 좋은 사람이려고 하고, 실수하지 않으려 하고, 바른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이 다른사람의 실수에 대한 허용범위가 적다. 이 친구도 내면에 ‘대체 인간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하는 지점이 있는데 잘 안 드러난다. 화를 어떻게 다스리냐 하니 운동 한다더라. 저는 그걸 보면서 무서웠다. 안에 용광로같은 뜨거움이 있는데, 고요한 원자로가 무섭지 않냐. 그걸 보여주는 데는 어떠한 또라이 연기도 필요없다. 목소리도 되게 차분하고, 딕션도 정확하지 않나. 그래서 다산의 자손이 보여주는 ‘정직한 광기’가 오히려 좋았다”고 설명했다.
또 조태오와 해치의 차이에 대해서는 “조태오는 우리가 볼때는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로 보이지만 이 친구 입장에선 악행이 아니다. 이 친구는 배려를 하는거다. 자기 입장에선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악을 저지른다는 생각이 전혀 없다. 박선우는 혼란을 겪고있는인물이다. 신념은 갖고있으나 위태로운 임계점에 도달해있는 상태고 안에서 정립되지 않은 인물이다. 배우 입장에서는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는데 저는 이 인물이 배우 스스로도 일정 정도 혼란을 가지고 진행하길 원했다.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됐는가에 대한 신이 존재하는 버전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왜 누락했냐면 관객도 배우도 그게 존재하는 순간 ‘사연이 이래서 이렇게 된거겠지’ 하고 카테고리가 정해진다. 그 밖에 있길 원했다.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맞닥뜨리는경우가 많은데, 이 인물이 그런 인물이길 원했다”고 밝혔다.
이번 ‘베테랑2’는 ‘밀수’에서 함께했던 장기하 음악감독이 사운드를 맡았다. ‘해치’ 테마곡을 비롯해 故 방준석 음악감독이 만든 전작의 시그니처 테마를 재해석한 ‘팀 베테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앞서 故 방준석 음악감독과 ‘베테랑2’ 작업을 함께하기로 이야기를 나누던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졌다는 류승완 감독은 “실제로는 돌아가신지 꽤 됐음에도 꼭 방준석 감독님을 추모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스코어 음악은 유지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장기하 음악감독님에게도 ‘방준석 감독님이 남겨준 베테랑의 유산을 지키고 싶다. 팀 베테랑의 오리지널 스코어의 멜로디는 그대로 다시 전달하면서 거기에 또 다른 장기하만의 변주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감독님도 부담됐을텐데 여기에 ‘해치’ 테마를 기가막히게 만들어주셔서 좋았다. 나중에 사운드 믹싱 작업하고 음악 얹고 나서 가장 먼저 한사람의 관객이 생각났는데 그게 방준석 감독님이었다. 내가 아는 방준석이라는 음악감독이라면 아마 장기하 음악감독을 칭찬해주시지 않았알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뭉클함을 전했다.
‘베테랑2’를 통해 류승완표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린 그는 “‘베테랑’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냐”는 질문에 “가감없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명확한 이야기가 있다. 궁금해 하시는 ‘해치가 왜 이렇게 되는가’에 대해 1편의 아주 중요하게 등장했던 인물이 해치와 관련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저한테 스크립트는 있고 서도철 이야기도 있다”면서도 “(‘베테랑2’가) 잘 돼야 볼수 있는 거다. 잘 된다는 건 손익분기점은 넘겨야 하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또 “시즌3도 9년 걸리냐”고 묻자 “9년까지는.. 그러면 서도철이 환갑이다”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정해인 배우, 황정민 선배와도 이야기 했다. 형태는 여러분들의 생각과 다르게 갈 수 있는데, 이야기는 있다”고 덧붙여 기대를 더했다.
한편 ‘베테랑2’는 오는 13일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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