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역대 통산 최다 1004경기 등판 기록을 갖고 있는 투수 정우람(39·한화 이글스)이 은퇴한다. FA로 와서 은퇴식까지, 한화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한화는 올 시즌 남은 대전 홈경기 중으로 정우람 은퇴식을 개최하기로 지난 15일 밝혔다. 올해 플레잉코치로 잔류군에서 후배 투수들을 지도하는 데 주력하며 선수로서 여지도 남겼지만 몸 상태가 올라오지 않아 은퇴를 결정했다.
정우람은 “그동안 한화 이글스 구단을 비롯해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오랜 기간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 저를 응원해주시고,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
경남상고 출신 좌완 투수 정우람은 지난 2004년 2차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 입단했다. 지난해까지 1군 18시즌 통산 1004경기에 나서 64승47패197세이브145홀드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했다. 977⅓이닝을 던지며 삼진 937개를 잡았다. 단일리그 기준 아시아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경기에 등판할 만큼 커리어 내내 철저한 자기 관리로 큰 부상 없이 롱런했다. 세트 포지션에서 글러브 안으로 공을 한 번 툭 치고 던지는 특유의 투구폼에서 정교한 제구와 주무기 체인지업이 강점이었다.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 홀드왕에 오르며 SK 왕조 멤버로 활약한 정우람은 2015년 시즌을 마친 뒤 한화로 FA 이적했다. 4년 84억원으로 불펜투수 역대 최고액에 팀을 옮겼다. 2018년 세이브 1위에 오르면서 철벽 마무리로 활약한 정우람은 2019년 시즌 종료 후 4년 39억원에 한화와 재계약했다. 두 번의 FA 계약으로 한화에서 9년을 보냈고, 선수 생활의 마침표도 대전에서 찍는다.
사실 두 번째 FA 계약 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될 뻔한 적도 있었다. 2020년 한화가 역대 최다 18연패 수렁에 빠지며 일찌감치 꼴찌로 떨어졌고, 정우람의 마무리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본격적인 리빌딩을 나서면서 정우람이 트레이드 매물로 떠올랐고, 당시 1위를 질주하던 NC의 약점이 마무리였다. 양 팀 니즈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트레이드가 될 것으로 보였지만 결국 결렬됐다.
당시 ‘종신 한화 정우람’이라는 릴레이 댓글이 나올 만큼 정우람 잔류를 원한 한화 팬심이 크게 작용했다. 끊이지 않는 트레이드설에 마음 고생도 했던 정우람은 “트레이드를 주장하신 분들도 팀의 미래를 위해, 한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각한 것이다. 한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팀에서 좋은 대우를 해준 만큼 충성하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한화는 젊은 선수 위주로 전력을 재편했고, 정우람은 팀의 버팀목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기여도를 인정받아 은퇴식이라는 큰 선물도 주어졌다. 원클럽맨은 아니지만 한화에서 9년간 404경기(409이닝) 27승26패135세이브17홀드 평균자책점 3.63 탈삼진 402개로 기여했다. 빼어난 성적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생활로 선수들의 귀감이 됐다. 지난해 1000경기 달성 기념으로 고참 투수 8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정우람에게 특별 반지를 선물할 만큼 선수들이 존경하고 따른 존재였다.
한화 구단도 이런 정우람의 가치를 높이 사 은퇴식을 마련했다. FA로 이적을 한 팀에서 은퇴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영예다. FA 계약을 하고 난 뒤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끝이 흐지부지되면서 선수 생활을 마친 선수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이적한 팀에서 은퇴식을 가진 FA 선수는 2010년 한화 김민재, 2010년 삼성 양준혁, 2011년 SK 김재현, 2017년 두산 홍성흔, 2017년 NC 이호준, 2019년 KT 김사율, KIA 이범호, 2022년 KT 유한준, 올해 박석민 그리고 정우람까지 10명밖에 없다. 원소속팀에 FA로 돌아온 양준혁과 홍성흔을 제외하면 8명에 불과하다.
한화의 외부 FA 영입 선수로는 김민재에 이어 정우람이 두 번째 은퇴식이다. 그 사이 송신영, 정근우, 이용규, 권혁, 송은범, 배영수, 심수창 등 여러 FA 선수들이 한화에 왔지만 전부 다른 팀으로 떠났다. 그런 점에서도 정우람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한화에도 큰 의미 있다. 채은성, 안치홍, 이태양 등 FA로 한화에 왔거나 돌아온 선수들에게도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