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의 남자’ 최승용(23·두산)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무려 408일 만에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안았다.
최승용은 지난 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16차전)에 선발 등판해 6이닝 4피안타(1피홈런) 1볼넷 5탈삼진 3실점 73구로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팀의 4연승이자 9-4 완승을 이끈 호투였다.
시작은 불안했다. 1회초 선두타자 김도영의 중견수 키를 넘기는 3루타, 박찬호의 볼넷과 도루로 무사 2, 3루 위기에 처한 가운데 김선빈에게 1타점 내야땅볼, 최형우 상대 초구에 1타점 우전 적시타를 연달아 맞고 2실점했다.
1회 2실점은 최승용에게 약이 됐다. 소크라테스 브리토-이우성을 연속 삼진으로 잡고 1회를 끝낸 그는 2회와 3회를 연달아 삼자범퇴 이닝으로 만들며 제 궤도에 진입했다. 투구수는 2회 12개, 3회 5개에 불과했다.
최승용은 4회초 1사 후 소크라테스 상대 솔로홈런을 맞으며 추가 실점했다. 2B-0S 불리한 카운트에서 던진 몸쪽 높은 143km 직구가 야속하게도 비거리 135m 우월 대형홈런으로 이어졌다. 이어 이우성, 변우혁을 연속 범타로 막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최승용은 7-3으로 앞선 5회초 대타 한준수, 최원준, 김도영을 9구 삼자범퇴 처리하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다. 이후 6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라 2사 1루에서 소크라테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막고 작년 10월 3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전 이후 352일 만에 퀄리티스타트를 맛봤다.
최승용은 9-3으로 리드한 7회초 홍건희에게 바통을 넘기고 기분 좋게 경기를 마쳤다. 투구수는 73개. 두산의 9-4 승리와 함께 지난해 8월 8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 이후 408일 만에 승리가 찾아왔다.
경기 후 만난 최승용은 “부상이 있어서 시즌을 늦게 시작했는데 이렇게 팀에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1군 처음 올라왔을 때보다 확실히 나만의 밸런스가 집히는 느낌이 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퀄리티스타트 비결로는 1회초 2실점을 꼽았다. 최승용은 “아무래도 (김)도영이가 대기록을 앞두고 있어서 의식이 됐고, 긴장이 됐다. 그런데 장타(3루타)를 맞고 정신을 차렸다. 맞자마자 홈런이 될 줄 알았는데 잠실을 쓴 덕에 넘어가지 않은 거 같다”라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투구수가 73개에 불과했던 최승용. 7회초에도 등판해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달성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을까. 최승용은 “욕심은 있었는데 이제 4일 쉬고 화요일(잠실 NC 다이노스전) 경기에 선발로 나가야 한다. 올해 또 선발투수로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코치님이 6회까지만 던지자고 하셨다”라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최승용은 지난 2021년 두산이 발굴한 좌완 유망주다. 소래고를 나와 2021년 신인드래프트서 두산 2차 2라운드 20순위로 뽑힌 그는 첫해 15경기 2홀드 평균자책점 3.93에 이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승선해 7경기라는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 3경기 1⅔이닝 무실점의 강심장을 선보이며 향후 두산을 이끌 좌완투수로 주목받았다.
놀라운 건 최승용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주말 취미반으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엘리트 야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교 시절 유연한 투구폼과 함께 직구,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고, 제74회 황금사자기에서 소래고가 우승후보 야탑고를 꺾고 16강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최승용은 2022년 2월 울산 스프링캠프에서도 한 차례 이슈가 된 바 있다. 당시 ‘국보’ 선동열 전 감독이 베어스의 일일 투수 인스트럭터로 변신해 두산 투수들을 유심히 살펴봤고, 최승용을 향해 “네게는 진짜로 해줄 말이 없다”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최승용은 지난해 이승엽 감독의 눈에도 들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34경기 3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97로 성장을 입증했다. 전반기 선발과 불펜을 오가야했지만 후반기 들어 안정을 되찾으며 15경기 1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90으로 두산 가을야구 복귀에 힘을 보탰다. 아울러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서도 1이닝 1탈삼진 무실점 10구로 호투하며 큰 경기에 강한 면모까지 뽐냈다.
최승용은 이에 힘입어 2023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대표팀에 승선해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호주와의 첫 경기에서 1⅔이닝 1피안타 2볼넷 4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로 한국의 3-2 연장 끝내기승리를 뒷받침했다. 성공적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이었다.
최승용은 2024시즌 라울 알칸타라-브랜든 와델-곽빈의 뒤를 받치는 4선발 자원으로 주목받았다. 연봉이 종전 6000만 원에서 1억200만 원으로 오르며 데뷔 첫 억대 연봉 고지까지 점령한 터. 그러나 지난 시즌 공을 너무 많이 던진 것일까. 2023시즌 종료 후 팔꿈치 피로골절이 발견돼 2024시즌 전반기를 통째로 날렸다.
최승용을 인고의 시간을 거쳐 지난 7월 27일 마침내 1군 엔트리에 복귀했다. 이후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페이스를 차근차근 끌어올리다가 마침내 이날 우리가 알던 최승용의 모습을 되찾았다.
최승용은 어떻게 재활 기간을 버텼냐는 질문에 “급해지기도 했는데 확실히 몸을 만들고 올라가자는 생각을 가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최대한 기다렸다. 그 결과 이제 몸 상태는 괜찮아졌다”라고 답했다.
최승용의 건강 회복 및 부활은 가을을 최대한 길게 보내고 싶은 두산에 상당히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선발이 곽빈, 조던 발라조빅, 최원준 등 3명뿐인 상황에서 로테이션의 뎁스가 한층 강화됐고, 불펜 경험도 풍부해 가을 롱릴리프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최승용은 “가을 무대에서 잘 던지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우리 불펜투수가 워낙 좋기 때문에 팀이 승리하는 데 최대한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스트시즌을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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