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가 대기 타석에서 믿기지 않는 상황을 목도했다. 삼중살로 경기가 순식간에 끝나면서 다음 타자 오타니는 타석에 서지도 못하고 끝났다. 메이저리그 최초 진기록의 희생양이 된 순간, 얼마나 충격받았으면 오타니도 타석에서 입을 삐죽 내밀었다.
다저스는 지난 2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홈경기에서 2-4로 졌다.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1위 다저스는 93승64패(승률 .592)를 마크, 5연승 질주한 2위 샌디에이고(91승66패 승률 .580)에 2경기 차이로 쫓기게 됐다.
올해 상대 전적에서 샌디에이고가 8승3패로 우위를 확보한 상황이라 만약 두 팀이 동률이 되면 다저스가 우승을 내주게 된다. 사실상 1경기 차이. 이제 시즌은 5경기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저스의 우승 확정 매직넘버는 여전히 ‘4’로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날 패배가 더욱 충격적이었다. 1-4로 뒤진 9회말 다저스는 샌디에이고 마무리 로베르트 수아레즈 공략에 나섰다. 윌 스미스, 토미 에드먼, 키케 에르난데스의 3연속 안타로 1점을 내며 무사 1,2루 찬스를 이어갔다. 다음 타자는 미겔 로하스. 로하스가 병살을 치더라도 오타니와 무키 베츠로 이어지는 타순이라 다저스로선 동점이나 역전에 대한 기대감을 이어갈 수 있는 흐름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로하스는 초구에 보내기 번트 동작을 취했지만 배트를 거둬들였다. 스트라이크가 되면서 다저스 벤치 사인이 강공으로 바뀌었다. 로하스는 수아레즈의 2구째 몸쪽 높은 포심 패스트볼을 쳤지만 3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번트를 대비해 앞쪽에 위치해 있던 샌디에이고 3루수 매니 마차도가 빠르게 공을 잡더니 뒤로 걸어가 3루를 찍고 2루 주자를 포스 아웃시켰다. 이어 1루가 아닌 2루로 던져 1루 주자 포스 아웃을 이끌어냈다. 2루수 제이크 크로넨워스도 자로 잰 듯한 송구로 1루에 연결, 타자 주자까지 모두 잡아냈다.
삼중살로 경기가 끝나면서 다저스가 2-4로 패했다. 삼중살로 경기가 끝난 건 메이저리그 역사상 28번째였는데 이렇게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한 팀은 이날 샌디에이고가 처음이었다. 샌디에이고는 이날 승리로 포스트시즌 확정 매직 넘버 ‘1’을 지우고 2년 만에 가을야구 복귀에 성공했다. 대기 타석으로 걸어갈 때만 하더라도 리듬을 타고 웃는 얼굴로 기대감이 가득했던 오타니도 입을 삐죽 내밀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비디오 판독이 진행되는 사이 타석에 섰지만 원심 그대로 경기 종료.
‘MLB.com’을 비롯해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경기 후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충격적이다. 오타니가 타석에 들어서지 못할 확률은 1%도 안 됐다. 불행하게도 그 낮은 확률이 일어났다. 그 상황에 삼중살이 나올 줄 몰랐다. 마차도가 (3루를 밟고) 2루가 아닌 1루로 던질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마이크 쉴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이보다 더 좋은 각본은 있을 수 없다. 마차도의 플레이가 정말 대단했다”고 말했다.
초구에 보내기 번트 사인을 냈다 강공으로 전환한 로버츠 감독의 결정을 두고도 말이 나온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후회하지 않는다. 로하스는 강한 타구를 쳤다. 타구가 빠졌으면 좋은 플레이, 잡히면 나쁜 플레이라고 하면 경기를 할 수 없다”며 결과론적 평가라고 잘라 말했다.
로하스가 초구에 번트 동작을 하자 샌디에이고는 3루수 마차도와 1루수 도노반 솔라노 모두 빠르게 앞으로 대시했다. 완벽한 번트가 아니라면 더블 플레이를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로하스 역시 “샌디에이고의 수비 움직임을 보면 내가 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결과에 대해선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다. 내게 너무나도 힘든 날이다. 팀 동료들을 실망시켰다”고 자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