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동기 부여를 심어줄 수 있어 기분 좋다.”
프로야구 SSG 랜더스가 시즌 최종전까지 5위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최고령 홀드왕’ 노경은(40)을 빼놓고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포스트시즌 탈락 확정의 날이 될 수도 있었던 지난 28일 대전 한화전에도 노경은이 결정적인 호투로 팀을 구했다.
3-2로 쫓긴 6회말 1사 2,3루 위기에서 선발 김광현에게 마운드를 넘겨받은 노경은은 이재원과 하주석을 연속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급한 불을 껐다. 1루가 비어있었지만 초구부터 이재원 상대로 몸쪽 깊숙한 투심을 던져 승부를 들어갔다. 포크볼로 이재원을 헛스윙 삼진 잡은 뒤 하주석에겐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 돌려세웠다.
7회말까지 막은 노경은이 1⅔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38홀드째를 기록했다. SSG도 6-2로 승리하며 5위 싸움을 30일 문학 키움전 마지막 경기로 끌고 갔다. 이날 SSG가 이기면 KT와 동률이 돼 10월1일 수원에서 사상 첫 5위 결정전 타이브레이커가 성사된다.
SSG가 9월 리그 1위(12승5패1무 승률 .706)로 가을야구 불씨를 되살린 데에는 10경기(12이닝) 1승7홀드 평균자책점 0.75를 기록 중인 노경은의 호투가 크다. 시즌 내내 많이, 자주 던졌지만 마지막까지 구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경이로운 수준이다.
28일 한화전을 마친 뒤 노경은은 “한 시즌을 보내기 위해선 웨이트를 꾸준히 해야 하는데 시즌 마지막에도 구위가 떨어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최근에 웨이트를 안 했다. 퍼포먼스를 위해 팔 컨디션을 좋게 유지하려 했다. 직구가 개인적으로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 비비 꼬지 않고 (타자 몸쪽으로) 깊숙하게만 던지려고 했다. (6회말 1사 2,3루에서) 만루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고, 가운데 몰리는 공 없이 몸쪽 깊숙하게만 던지려 했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돌아봤다.
자신의 등번호에 맞춰 38홀드째를 기록한 노경은은 “주변에서 물어봤을 때 백넘버로 마무리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그걸 이뤄 개인적으로 조금 뜻깊은 것 같다”며 웃은 뒤 “기록으로 보면 경기수, 이닝수가 많다고 하는데 난 관리 잘 받고, 잘 쉬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체력적으로) 버겁다거나 그런 건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다. 부모님이 건강한 몸을 물러주신 것이 첫 번째다. 타고난 체력 같은 건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올 시즌 두산 좌완 이병헌과 함께 리그 최다 77경기에 나선 노경은은 순수 구원 최다 83⅔이닝을 소화 중이다. 40세 이상 투수로는 2015년 한화 박정진(84이닝, 당시 40세)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던진 노경은은 8승5패38세이브 평균자책점 2.90 탈삼진 71개를 기록 중이다. 2012년 박희수가 갖고 있던 32홀드를 넘어 구단 최다 기록을 세웠고, 40세 나이로 리그 최고령 홀드왕까지 확정했다. 프로 22년 차에 첫 타이틀 홀더가 됐다. 2012~2013년 두산 시절 핵심 선발투수로 활약하던 이후 최고 시즌을 보내고 있다.
2021년 시즌을 마친 뒤 롯데에서 방출된 노경은은 SSG에 입단 테스트를 받고 통과해 선수 생활을 연장했다. 그때만 해도 이런 전성기가 올 줄은 몰랐다. 2022년 41경기(8선발·79⅔이닝) 12승5패1세이브7홀드 평균자책점 3.05로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통합 우승에 기여했고, 지난해에도 76경기(83이닝) 9승5패2세이브30홀드 평균자책점 3.58로 호투했다.
올해까지 SSG에 와서 3년간 194경기(246⅓이닝) 29승15패3세이브75홀드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연봉은 각각 1억원, 1억7000만원, 2억7000만원으로 총액 5억4000만원. SSG로선 그야말로 한푼도 아깝지 않을 성적이다. 역대 최고 수준의 방출생 영입 성공작으로 꼽힐 만하다.
노경은은 “기록이라는 게 쌓이고, 달성되다 보니 동기 부여가 된다. 내년에 홀드 20개를 하고, 또 30개에 도전해서 3년 연속으로 하고 싶기도 하다”며 “나처럼 늦게 되는 선수들도 있다. 그런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경은이 형처럼 나이 먹어도 이런 기록을 달성할 수 있구나’, ‘이렇게 하면 이슈가 될 수 있구나’ 그런 동기 부여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뿌듯해했다.
노경은의 시즌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30일 키움과의 시즌 최종전이 남아있다. 이날 이기면 5위 타이브레이커를 치르고, 이 경기도 이기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나간다. 노경은은 “선수들도 KT 경기를 계속 체크했는데 솔직히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가 이겨야 한다”며 “내일이 없으니 투수들은 1회든 2회든 언제 올라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 농담으로 봉황대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추어 단기 대회를 치르는 것처럼 마음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