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들이 수놓은 방패와 창의 대결, 그 승자는 방패였다.
'실드 유나이티드(수비수팀)'가 20일 오후 6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4 넥슨 아이콘 매치'에서 'FC 스피어(공격수팀)'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뒀다.
아이콘 매치는 이제는 축구화를 벗은 전설들이 한국에서 이색 경기를 펼치는 초대형 축구 행사다. FC스피어는 세계적인 공격수들로 구성된 팀으로 티에리 앙리 감독과 박지성 코치가 지휘다. 주장은 첼시의 전설 디디에 드록바.
이를 막아야 하는 실드 유나이티드는 시대를 풍미했던 수비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감독은 파비오 칸나바로, 코치는 이영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리오 퍼디난드가 주장 완장을 찼다.
FC스피어는 4-3-3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에당 아자르-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루이스 피구, 히바우두-마루안 펠라이니-카카, 티에리 앙리-디미타르 베르바토프-디디에 드록바-카를로스 테베스, 김병지가 선발로 나섰다.
실드 유나이티드는 3-4-3 포메이션으로 시작했다. 클라렌스 세이도르프-리오 퍼디난드-야야 투레, 욘 아르네 리세-안드레아 피를로-하비에르 마스체라노-카를레스 푸욜, 네마냐 비디치-레오나르도 보누치-파비오 칸나바로, 에드윈 반 데 사르가 먼저 출격했다.
이제는 축구화를 벗은 지 오래된 선수들이 많은 만큼 치열한 몸싸움이나 압박은 없었다. 그럼에도 전설들의 대결답게 멋진 스킬을 선보이며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특히 세이도르프는 연달아 센스 넘치는 힐패스로 상대를 속이며 클래스를 자랑했다.
예능감도 잊지 않았다. 전반 11분 앙리가 결정적 역습 기회에서 공을 직접 몰고 전진했다. 그는 스타답게 평범하게 패스하는 대신 디디발로 공을 차는 노룩 패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앙리는 실수로 잔디를 차고 말았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에게 사과했다.
방패가 먼저 뚫어냈다. 전반 13분 세이도르프가 멋진 퍼스트 터치로 드록바를 제쳐내며 일대일 기회를 잡았다. 그는 욕심 내지 않고 옆으로 패스했고, 이를 투레가 가볍게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뽑아냈다. 순간적인 번뜩임은 여전한 모습들이었다.
실드 유나이티드가 두 골 차로 달아났다. 전반 21분 세이도르프가 중앙선 부근에서 공을 잡은 뒤 골키퍼가 나와있는 걸 보고 발리 슈팅을 날렸다. 김병지는 슥 보더니 팔을 뻗지 않았고, 공은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또 다른 전설들이 피치 안으로 들어왔다. 실드 유나이티드는 전반 24분 퍼디난드를 불러들이고 히카르두 카르발류를 투입했다. FC스피어는 잠시 후 델 피에로를 대신해 안드리 셰우첸코를 넣었다.
김병지가 쇼맨십을 보여줬다. 그는 전반 27분 마스체라노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멋지게 막아낸 뒤 공을 몰고 박스 바깥까지 나갔다. 김병지는 '드리블하는 골키퍼'답게 5분 뒤에도 마스체라노의 슈팅을 다시 한번 잡아낸 후 중앙선 부근까지 치고 올라가며 팬들의 엄청난 환호성을 유발했다.
부상자까지 속출했다. 투레가 허벅지 뒷쪽을 만지작거리며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결국 전반 32분 아디와 교체되며 벤치로 물러났다. 오랜만에 열심히 뛴 탓인지 햄스트링 부위에 부담이 생긴 듯 보였다. 전반은 수비수팀이 2-0으로 앞선 채 마무리됐다.
FC스피어가 아쉬움을 삼켰다. 후반 6분 카카의 감아차기 슈팅은 오른쪽으로 벗어났고, 후반 8분 드록바의 결정적 슈팅은 푸욜에게 블록당했다. 1분 뒤 나온 드록바의 헤더도 반 데 사르의 선방에 막혔다.
방패가 또 창을 부러뜨렸다. 후반 9분 마스체라노가 멈춰있는 FC스피어 수비 라인 뒤로 빠져나갔고, 중앙으로 패스했다. 세이도르프는 멀티골을 노리는 대신 옆으로 내줬다. 이를 박주호가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팀의 3번째 골을 터트렸다.
FC스피어는 차례로 베르바토프와 앙리를 불러들이고 이천수, 안정환을 넣었다. 실드 유나이티드는 반 데 사르를 임민혁과 교체하며 수문장을 바꿔줬다. 아자르가 후반 18분 한 차례 드리블 실력을 뽐내며 보누치의 반칙을 유도했다. 걸려 넘어진 아자르도 넘어뜨린 보누치도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실드 유나이티드가 4-0을 만들었다. 후반 35분 세이도르프가 수비 사이로 패스를 찔러넣었다. 이를 받은 마스체라노가 부드러운 터치로 골키퍼까지 따돌린 뒤 침착하게 마무리했다.
FC스피어가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후반 38분 셰우첸코가 골키퍼에게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그리고 이 순간 박지성이 깜짝 출전했다. 그는 무릎이 좋지 않아 코치 역할을 맡기로 했지만, 안정환과 교체되며 잔디를 밟았다. 박지성이 몸을 풀자 관중석에선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지성은 직접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서 득점했고, 팬들은 그의 PSV 에인트호번 시절 응원가인 '위송빠레'를 열창했다. 한 팬이 뜨거운 눈물을 쏟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포착되기도 했다. 더 이상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경기는 그대로 실드 유나이티드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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