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 오재원의 협박에 못 이겨 수면제를 대리 처방한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소속 8명 선수들의 법적 처분이 모두 끝났다. 이들은 잃어버린 1년을 보상받고, 내년 시즌 그라운드로 돌아올 수 있을까.
법조계에 의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7단독 조민혁 판사는 10월 25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와 황모씨에 벌금 300만 원 약식명령을 내렸다. 검찰의 약식기소액과 같은 금액이다. 약식명령은 재판 없이 벌금, 과태료 등을 처분하는 절차다.
오재원은 현역 시절이었던 2021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야구선수 등 14명으로부터 총 86회에 걸쳐 의료용 마약류인 수면제의 일종 스틸녹스와 자낙스 2365정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14명 가운데 두산 소속 현역 선수는 8명에 달한다.
두산은 오재원 사태가 터진 뒤 구단 1, 2군을 통틀어 대리 처방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8명이 과거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 오재원에게 건넨 사실이 밝혀졌고, 두산은 4월 초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이를 신고했다.
오재원은 두산 후배들을 협박해 졸피뎀 성분의 수면유도제인 스틸녹스정 대리 처방을 강요했다. 8명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주로 성품이 순하고 아직 빛을 보지 못한 1.5~2군급 선수들만 골라 ‘불법 행위’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오재원은 수년간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행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끊임없이 대리 처방을 강요하면서 “(수면제를 받아오지 않으면) 칼로 찌르겠다”, “팔을 지져 버리겠다” 등 협박 메시지를 보냈다. 위계질서가 강한 야구계 특성 상 힘없는 후배들은 ‘우승 캡틴’이었던 오재원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진 신고한 두산 A선수는 “(오재원이) 되게 무서운 선배였어요. 팀에서 입지가 높은 선배님이시고, 코치님들도 함부로 못 하는 선수여서 괜히 밉보였다가 제 선수 생활에 타격이 올까봐…”라고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이 8명은 검찰 조사로 인해 2024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1군 주전급 선수, 1군에서 대타, 대수비, 대주자로서 가치가 있는 선수가 다수 포함됐다. 그런데 1군은 물론이고, 퓨처스리그 무대에도 서지 못하면서 두산 구단의 배려 아래 이천 베어스파크에서 개인 훈련을 하는 데 그쳤다. 오재원의 악성 심부름을 강제로 했다는 이유로 미래를 모른 채 허송세월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이들을 향한 법적 처분은 모두 마무리가 된 형국이다. 비교적 심부름이 잦았던 김모씨가 벌금 300만 원 약식명령을 받은 가운데 3명은 보호관찰소 선도 조건부 기소유예, 4명은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두산 구단은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된 10월 15일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전달받은 내용을 신고한 뒤 16일 사건 처분과 관련한 공식 문서를 제출했다. 8인 가운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선수들은 마약보호관찰소, 마약퇴치운동본부 등에서 재발 방지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남은 건 KBO의 결정이다. 선수 8명애 대한 징계위원회 개최 여부, 징계 수위 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야구계에서는 이들을 향한 징계가 다소 부당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8명 모두 범법 행위를 한 건 맞지만, 검찰 측은 “오재원이 구단 내 주장 또는 야구계 선배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20대 초중반의 어린 후배나 1・2군을 오가는 선수 등에게 수면제를 처방받아줄 것을 요구했고, 오재원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14명이 자신들 명의로 수면제를 처방받아 오재원에게 교부한 것으로, 이 과정에서 오재원이 일부 후배들에게 욕설뿐만 아니라 협박까지 했던 사실이 확인됐다”라며 오재원의 강압성을 인정했다.
여기에 8명 모두 두산 구단의 선제적 조치에 따라 피의자 신분이 확인된 5월 말부터 그 어떠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껏 100경기가 넘는 출장 정지 징계를 소화한 셈이다. 이들은 2군 선수단 훈련에도 합류하지 못하면서 헬스장에서 한낱 개인 훈련을 하면서 한해를 보냈다. 아울러 자진 신고를 한 부분도 정상 참작이 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두산 관계자는 10월 31일 OSEN에 “이제 선수들의 법적 처분이 모두 끝났고, 구단이 취할 수 있는 조치도 모두 취했다. KBO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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