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도 쳐본 사람들이 잘 칠 수밖에 없다. ‘손맛’이라는 것을 느껴봐야 안다. 그동안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는 이 ‘손맛’을 느끼는 선수들이 부족했다. 결국 롯데는 3년 만에 다시 담장을 낮추기로 결정했다.
롯데는 지난 2일부터 사직구장의 담장 높이를 6m에서 4.8m로 낮추는 작업을 시작했다. 공격야구의 부활을 위한 구단의 고심을 실현시키고 있다.
롯데는 그동안 장타력 기근에 시달렸다. 지난해 김태형 감독이 부임하면서 “홈런 칠 수 있는 타자들이 없다”라고 타선의 인상을 말하기도 했다.
롯데는 2018년 20홈런 이상을 4명(이대호 37개, 전준우 33개, 손아섭 26개, 앤디 번즈 23개)이 때려낸 이후 2019년부터 올해까지 6년 동안 20홈런은 4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대호가 2번(2020년 20개, 2022년 23개), 전준우가 2번(2019년 22개, 2020년 26개)씩 기록했다. 이들 말고는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전무했다.
특히 롯데는 2022시즌을 앞두고 사직구장 그라운드를 손봤다. 홈플레이트를 백네트쪽으로 당기면서 담장까지 거리를 늘렸다. 중앙은 118m에서 120.5m로, 좌우측은 95m에서 95.8m로 멀어졌다. 무엇보다 담장을 4.8m에서 6m까지 높였다. 보스턴 펜웨이파크의 그린몬스터를 빗댄 ‘사직몬스터’라고 불리기도 했고 성민규 전 단장 재임시절 담장이 높아지면서 ‘성담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가뜩이나 타구를 띄우면서 장타력을 갖춘 선수가 부족해졌는데, 구장이 커지고 담장까지 높아지니, 홈런이 나오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졌다. 2022년 은퇴시즌의 이대호 외에는 20홈런 이상을 아무도 기록하지 못했다.
반대로 투수들에게는 ‘성담장’의 존재로 피홈런 숫자가 조금이나마 줄었다. 타자들에게는 불리했지만 투수들 입장에서는 피홈런을 억제하는 효과를 봤다. 담장을 높이기 전 2021년 사직구장에서 72경기 72개의 피홈런을 기록했고 51개의 홈런을 치면서 홈런마진 -21을 기록했던 롯데였다.
2022년 70경기 피홈런 40개, 홈런 36개를 기록하면서 홈런 마진을 -4까지 줄였고 2023년 67경기 27피홈런에 36홈런으로 처음으로 +9의 홈런마진을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67경기 49피홈런에 49홈런을 치면서 홈런마진이 제로였다. 3시즌 홈런마진은 +5였다(121홈런, 116피홈런).
‘성담장’의 등장이 극적인 성적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잃은 것들이 많았다. 타자들의 큼지막한 타구가 높디 높은 담장에 걸리면서 홈런 숫자에서 손해를 봤다. 무엇보다 높아진 철조망 펜스 때문에 외야석이 시야방해석으로 전락했다.
이는 사실 담장을 높인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구단 마케팅 파트에서 우려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진행됐고, 우려대로 팬들의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안그래도 관중 친화적 구장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데 팬들의 불편함이 가중됐다. 담장 교체 여론이 계속 일었다.그리고 올해 롯데 타선이 완전히 리빌딩에 성공하면서 담장 높이를 낮추는데 공감대 형성이 급격하게 이뤄졌다. 김태형 감독 주도 하에 타선을 완벽하게 재편하면서 더 이상 전준우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타선으로 탈바꿈 시켰다. 롯데 타선은 타율 2할8푼5리, 팀 OPS .782로 모두 리그 2위에 올랐다.
기존 전준우에 윤동희 고승민 나승엽 손호영, 그리고 외국인 타자 빅터 레이예스까지 중장거리 타자들이 타선에 자리잡았다. 특히 롯데 타자들은 2루타 285개로 가장 많은 2루타를 때려낸, 운동 능력 넘치는 타선으로 거듭났다.
▲ 2024시즌 롯데 주요 선수 타구속도 / 발사각 / 2루타 / 홈런 수치 (롯데 측정 트랙맨 데이터)
- 윤동희 141.4km / 13.3도 / 35개 / 14홈런
- 나승엽 139.8km / 15.6도 / 35개 / 7홈런
- 고승민 141km / 14.5도 / 27개 / 14홈런
- 손호영 136.5km / 17도 / 26개 / 18홈런
- 레이예스 142.4km / 10.7도 / 40개 / 15홈런
라인드라이브 유형의 타자들에게 이전의 사직구장도 홈런을 치기 힘든 구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담장이 더 높아졌으니 홈런은 더더욱 나오지 않았다. 담장 높이가 주는 심리적인 압박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 자리 잡은 젊은 타자들이 강하고 빠른 타구들을 양산했었는데 이제는 타구들을 띄우기 시작했다. 라인드라이브 유형의 타자들이 타구를 띄우면서 20홈런의 가능성까지 보여줬다. 구단으로서는 이들의 장점을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박준혁 단장은 지난해 부임 이후부터 공격 야구와 홈런, 야구의 재미 등을 언급하면서 담장 높이를 낮추는 것을 고려했고 올해 실행에 옮겼다. 기존에 제기된 팬들의 민원, 타선 리빌딩과 타자들의 성장 등의 상황이 맞물리면서 ‘성담장’ 철거를 결정했다.
구단은 “높은 담장으로 인한 외야관중석 시야방해 개선과 손호영, 윤동희, 고승민, 나승엽 선수등 발사각이 좋은 중.장거리형 선수들의 공격력 강화 차원에서 외야 담장을 낮추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롯데는 관중들을 열광케 할 공격 야구의 팀으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