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 와서 아버지가 진짜 좋아하셨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한 사이드암 투수 엄상백(28)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충주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 한화 경기를 ‘직관’하곤 했다. 아버지를 따라 찾은 잠실야구장에서 한화를 대표하는 외국인 타자 제이 데이비스의 홈런볼을 삼촌이 잡아 선물로 받은 추억도 있다.
지난달 7일 한화와 4년 총액 78억원(계약금 34억원, 연봉 총액 32억5000만원, 옵션 11억5000만원)에 FA 계약했을 때 가장 기뻐한 것도 다름 아닌 ‘한화팬’ 아버지였다. “아버지께서 충주 분이시다. 제가 한화에 와서 진짜로 좋아하셨다. 아버지 친구 분들도 충청도에 계신 분들이 많아 더 좋아하신 것 같다”며 웃었다.
어릴 적 추억이 깃든 팀이지만 상대팀으로 만났을 때는 가장 어려웠다. 한화전 통산 32경기(16선발·88⅓이닝) 3승8패5홀드 평균자책점 8.05로 유독 약했다. “한화만 만나면 맨날 맞았다. (채)은성이 형이랑 (노)시환이가 너무 잘 쳤다”는 것이 엄상백의 말이다. 채은성은 한화 이적 후 2년간 엄상백에게 타율 4할1푼7리(12타수 5안타 3홈런), 노시환은 타율 5할(26타수 13안타)로 절대 강세를 보였다. 이제는 같은 한화 소속이 됐으니 엄상백의 성적 상승을 기대할 만한 요소다.
덕수고를 졸업하고 2015년 1차 지명으로 KT에 입단한 엄상백은 9시즌 통산 305경기(107선발·764⅓이닝) 45승44패3세이브28홀드 평균자책점 4.82 탈삼진 670개 기록했다.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제구가 안정되고, 체인지업을 장착하면서 기량이 향상됐다.
2022년부터 최근 3년간 82경기(70선발·408⅔이닝) 31승18패 평균자책점 3.88 탈삼진 387개로 이 기간 다승 6위, 탈삼진 8위, 이닝 10위에 올랐다. 계산이 서는 선발로 자리잡았고, 아직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시장 가치를 높여 FA 대박을 쳤다. FA 투수 ‘투톱’이었던 최원태가 6일 삼성과 4년 총액 70억원에 계약하면서 엄상백이 올겨울 FA 투수 최고액으로 ‘최대어’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10년 몸담은 KT를 떠나는 마음도 가볍진 않았다. 그는 “KT가 1군에 처음 진입했을 때부터 신인으로 함께했다. 그래서 과분하게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어릴 때는 KT 팬분들께 ‘아픈 손가락’이었다. 군대 갔다 와서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할 때 팀을 떠나게 돼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FA로 좋은 대우를 받고) 좋게 가는 것이지만 마냥 기쁜 마음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제 조금씩 한화 선수가 된 것을 실감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도 KT 선수들의 단체방에서 나가고 한화 선수들의 방에 초대됐다. 지난달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현장을 찾아 한화 선수들과 가까워진 시간도 가졌다. 계약상 11월까지 KT 선수 신분이라 함께 운동할 순 없었지만 훈련을 지켜보며 식사 시간도 가졌다. 투수 파트는 물론 주장 채은성을 비롯해 고참 야수들도 그를 챙겨줬다.
매년 선발진에 크고 작은 변수가 끊이지 않아 고생했던 한화는 엄상백에게 풀타임 선발로서 계산이 서는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올해 한화는 류현진만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넘기며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다. 선발진이 약한 팀 사정상 제대로 휴식도 갖지 못했던 류현진에게도 엄상백의 합류는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엄상백도 류현진과 한 팀이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역삼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08년 11월 충남 공주에서 열린 제9회 박찬호기 전국초등학학교 야구대회 때 류현진을 만난 기억이 있어서다. 그때 당시 꼬마 선수 엄상백이 박찬호, 류현진, 김태균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커뮤니티에 올라와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사진에는 안 보였지만 당시 그 자리에는 김경문 한화 감독도 있었다. 당시에는 두산 감독이었다. 16년 전 각기 다른 소속이었던 감독, 선수, 꼬마가 이제는 한화에서 5강 도전을 위해 뭉쳤다.
그때 기억이 생생한 엄상백은 “박찬호, 박세리, 류현진, 김태균 등 유명한 선배님들이 다 계셔서 ‘우와, 우와’ 했던 기억이 난다. 야구를 좋아하시던 선생님이 블로그에 올리신 사진 같은데 그걸 보니 신기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류현진 선배님이 메이저리그에 갔다. 그런 선배님과 같이 야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