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국제고-소프트뱅크 출신 하야 신노스케 이야기
[OSEN=백종인 객원기자] 고교 때는 ‘야구 천재’로 불렸다. 1학년 때 4번 타자를 맡을 정도다. 졸업과 동시에 프로행에 성공했다. ‘수위 타자와 통산 2000 안타를 달성하겠다.’ 패기에 찬 포부가 가득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3년 간 1군 근처도 못 가봤다. 2군도 1경기 출전이 전부다. 대부분을 3군에서 보내야 했다.
결국 올 게 왔다. 3년 차 겨울이었다. 전력 외(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제 막 21살 생일을 지날 무렵에 백수가 된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하야 신노스케(早真之介)라는 전직 야구 선수의 얘기다.
교토 국제고 출신이다.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걸로 유명한 곳이다. 빠르고, 정확한 그를 눈여겨본 곳이 있다. 명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
다만, 정식 지명은 아니다. 육성 드래프트 4번으로 뽑혔다. 연습생과 비슷한 신분이다. 계약금 300만 엔(약 2847만 원), 연봉 400만 엔(약 3797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그렇다고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그나마 (교토 국제고) 동기생 중에는 단 2명 만이 프로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담당 스카우트는 이렇게 호평한다. “공수주를 모두 갖춘 선수다. 특히 좌타자로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다. 파워도 만만치 않다. 고교 3년간 2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장차 1군의 외야 한 자리를 노릴 수 있는 기대주다.”
후회 없는 3년이었다. 온 힘을 다했지만,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더 이상은 미련이다. 버려야 했다.
“(방출 통보 후)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에서는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권했다.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처음으로 ‘야구’라는 것을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겨우 21살 때다. 백수가 됐다. 뭘 해야 하나…. 우선 교토, 후쿠오카를 돌던 객지생활을 정리했다. 시가현의 본가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경찰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알아보니 공채 시험을 봐서 합격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책상 앞에 앉았다. 하루 6시간 이상은 교재와 씨름했던 것 같다. 특히 수학이 어려웠다. 하루에 1페이지도 진도를 빼지 못한 날이 많았다.”
지난여름이다.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거린다. 그때였다.
“TV를 켜니 고시엔 대회가 한창이더라. 후배들이 결승까지 가서, 결국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걸 보며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동해바다 건너서~.’ 교가가 나오는데 눈물이 나더라.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도 3학년 때인 2020년, 고시엔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어찌어찌 시험을 마쳤다. 몇 주가 지났다. 현(滋賀県, 시가현)으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다. 경찰 채용 시험 합격 통보였다.
도착한 날이 12월 5일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프트뱅크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달았던 백넘버가 125번이었기 때문이다. (3군이라 두 자릿수 이하는 꿈도 꾸기 어렵다.)
경찰 아카데미 입교는 내년 봄이다. 이런 다짐을 잊지 않는다.
“21살까지는 야구가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은퇴라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거기서 배운 인내와 책임감으로, 이제 세상으로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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