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 한 자리는 교체되는 수순으로 보인다. 그 선수가 올해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 2위의 애런 윌커슨(35)이다.
윌커슨은 최근 자신의 SNS 계정 프로필에서 롯데 자이언츠 태그를 삭제했다. 보통 자신의 소속을 나타내는 구단 공식 계정을 태그하곤 하는데, 윌커슨의 계정에서 롯데 계정이 사라진 것. 롯데와 윌커슨의 결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롯데는 현재 외국인 선수 구성이 더디다. 지난달 26일 202안타 단일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운 빅터 레이예스와 총액 125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아직 외국인 투수 구성은 마치지 못했다. 아직 한 명의 외국인 투수도 계약하지 못한 구단은 롯데 뿐이다.
올해 외국인 조합이었던 찰리 반즈, 애런 윌커슨은 마운드의 원투펀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더할나위 없는 활약을 펼쳤다. 반즈는 좌완 에이스로 3시즌 째 굳건했다. 반즈는 내전근 부상으로 두 달 가량 전열을 이탈했지만 25경기 150⅔이닝 9승6패 평균자책점 3.35, 171탈삼진, 퀄리티스타트 17회 등으로 좌완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다.
윌커슨도 지난해 댄 스트레일리의 대체 선수로 합류해 재계약에 성공한 뒤 탄탄한 모습을 보여줬다. 윌커슨은 올해 32경기 196⅔이닝 12승8패 평균자책점 3.84, 167탈삼진, 퀄리티스타트 18회의 기록을 남겼다. 시즌 초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지만 5이닝은 기본으로 책임졌다. 윌커슨은 올해 최다 이닝 투수로 이닝이터 역할을 했고 ‘스포츠투아이’ 기준 투수 부문 WAR에서도 NC 다이노스 카일 하트(5.80)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만큼 팀 공헌도와 기여도 모두 높았다는 의미.
일단 롯데는 반즈와 윌커슨을 모두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시켰다. 재계약 의사가 있음을 전달한 것. 하지만 두 선수의 상황은 다르다. 반즈는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 번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시즌 동안 KBO리그 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선수인 것은 분명하다. 계약 조건이 관건이겠지만 최근 ‘역수출’ 선수들의 사례를 보게 되면 반즈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 있는 조건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롯데는 반즈와 재계약 의사가 강하고 반즈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윌커슨의 경우 다르다. 윌커슨은 롯데가 고민하고 있다. 어쩌면 윌커슨의 SNS가 큰 힌트를 줬을 수 있다. 윌커슨은 이닝 소화력, 그리고 공격적인 투구 내용으로 마운드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특히 196⅔이닝 동안 볼넷은 27개 밖에 내주지 않을 정도였다. 9이닝 당 비율로 따지면 1.24개에 불과하다. 한국 무대에 적응한 이런 투수를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윌커슨에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롯데는 일단 올해 외국인 선수 시장에서 괜찮은 선수들을 물색했고 또 점찍었다. 이들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윌커슨과 재계약 의사가 있다고 하지만 여러 후보군 가운데 비교적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나이가 걸림돌이다. 2025년이면 36세 시즌에 돌입한다. 나이가 많다고 무조건 구위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에이징커브가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또 올해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졌다.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200이닝 가까이 소화한 투수, 그리고 누적 투구수 1위(3124구)의 투수를 걱정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울러 환경의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일단 윌커슨은 올해 피치클락 위반을 가장 많이 범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롯데 구단 자체가 올해 피치클락에 구애받지 않고 투구를 했다. 1247회를 위반했다. 경기 당 8.66회. 올해는 제재가 없었기에 가능했지만 내년부터는 다르다.
주자가 없을 때 20초, 주자가 있을 때 25초의 제한을 두고 투구를 해야 한다. 피치클락을 시행 중인 미국과 대만보다 시간이 넉넉한 편이지만, 윌커슨은 이미 지난해 롯데로 합류하기 전, 마이너리그에서 피치클락에 고전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롯데에 합류하면서 “트리플A에서 로봇 심판이나 자동 스트라이크 등 새로운 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 야구를 ‘리얼 베이스볼’, 진짜 야구로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KBO리그도 미국을 따라간다. 올해의 잠재적 위협은 내년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볼넷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윌커슨은 극단적인 공격적인 유형이다. 상승무브먼트가 좋은 패스트볼로 땅볼보다는 뜬공을 유도하는 투수. 땅볼/뜬공 비율이 0.75다. 대신 공격적인 승부에 타고투저 경향이 겹치면서 올해 18개의 피홈런을 허용했다. 내년 공인구 반발계수가 어떨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롯데는 사직구장 담장을 6m에서 다시 4.8m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성담장’을 철거한다.
높은 담장 때문에 투수들이 그동안 어느정도 이득을 봤지만 롯데는 올해 성장한 젊은 타자들의 장타력을 증강시키고 심리적인 압박감을 덜어주기 위해 담장을 원래 높이로 회귀하기로 결정했다. 윌커슨에게 다시 불리한 환경이다.
재계약 할 이유도 충분하지만, 재계약을 하지 않더라도 납득이 가는 이유들이다. 롯데로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모험이다. 롯데는 고심 끝에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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