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건방졌다, 주연은 짧았지만…" 18년간 무려 6개팀, 우승만 3번 경험한 '행운아' 웃으며 은퇴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5.01.13 07: 10

“주연은 짧고, 조연의 시간이 길었지만…행운이었다.”
지난 10일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 제2의 야구 인생 시작을 알린 전 프로야구 포수 허도환(41)은 화려한 스타나 주전은 아니었지만 백업으로 18년의 긴 세월을 프로에서 살아남았다. 무려 6개 팀을 다양한 방식으로 옮기며 한국시리즈 우승만 3번 했으니 성공한 야구 인생이다. 
서울고 출신으로 2003년 두산에 2차 7라운드 전체 56순위로 지명된 포수 허도환은 단국대를 거쳐 2007년 프로에 입단했다. 그해 5월27일 대전 한화전에서 9회 대주자로 교체 출장한 게 1군 데뷔전이었는데 두산에선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후 방출되는 아픔 속에 자비로 수술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했다. 

LG 시절 허도환. 2023.07.30 / dreamer@osen.co.kr

2023 KBO 한국시리즈 4차전 LG 허도환이 8회 1타점 적시 2루타를 날리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3.11.11 /jpnews@osen.co.kr

이후 2011년 1월 넥센에서 육성선수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다시 프로에 돌아왔다. 당시 신고선수라는 명칭이었던 육성선수는 6월1일부터 1군 엔트리 등록이 가능했다. 5월말 주전 포수 강귀태가 허리 통증으로 빠지면서 허도환에게 6월 첫 날부터 1군 콜업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정된 블로킹을 앞세워 단숨에 주전 자리를 잡은 허도환은 2012년 첫 올스타 ‘베스트10’에도 선정됐다. 
두산 시절 허도환. 2007.01.11 /ajyoung@osen.co.kr
2012 올스타전 넥센 허도환 2012.07.21 /jpnews@osen.co.kr
당시 웨스턴리그 선발투수 류현진(한화) 공을 받았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기분 정말 좋았다”고 떠올린 허도환은 “그때는 어렸다. 경기에 계속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건방졌다”고 고백했다. 어렵게 잡은 기회였지만 어느 순간 경기에 뛰는 것이 익숙해졌고, 기회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지낼 때였다. 
결국 2014년 시즌 중 주전 포수 자리를 후배 박동원에게 넘겨줬다. 7월8일 청주 한화전에서 배탈 증세로 결장한 사이 박동원이 그 3연전에 10타수 6안타 1홈런 3타점으로 활약하며 허도환의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입지가 좁아진 허도환은 이듬해인 2015년 4월 한화로 트레이드되며 넥센을 떠났다. 
허도환은 “어릴 때 기회란 기회는 많이 받았는데 그때는 그걸 잘 몰랐다. 지나고 보니 ‘당시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기도 한다”며 배탈로 자리를 비운 사이 주전을 빼앗긴 것에 대해 “나도 처음에 그렇게 기회를 잡아 열심히 했고,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이 누군가에겐 또 기회가 된 것이다. (박동원이) 열심히 준비를 잘했기 때문에 그 기회를 잡은 거다. 어렸을 때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많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괜찮다. 인생의 순리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돌아봤다. 
넥센 시절 허도환과 박동원. 2015.01.30 /spjj@osen.co.kr
한화 시절 허도환. 2015.05.03 /sunday@osen.co.kr
그 뒤로 허도환은 더 이상 주전 마스크를 쓰지 못했다. 주목받기 어려운 백업 포수의 길이 시작됐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특유의 긍정 에너지로 다시 부딪쳤다. 한화로 트레이드된 뒤 김성근 감독의 강도 높은 훈련을 버티며 체중을 빼고 수비력을 끌어올렸다. 2017년 시즌 후 2차 드래프트에선 SK에 3라운드 전체 23순위로 지명됐다. 넥센 시절 감독으로 기회를 줬던 염경엽 당시 SK 단장이 그를 불렀다. 
2018년 SK에서 첫 우승을 경험했다. 그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연장 12회 대수비로 교체 출장, 13회 김광현이 삼진을 잡고 우승이 확정된 순간 공을 잡고 펄쩍 뛰며 마운드로 뛰어갔다. 2019년 11월에는 KT로 트레이드된 뒤 백업으로 공수에서 쏠쏠한 활약을 이어갔고, 2021년 또 우승을 경험했다. KT의 4전 전승으로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경기는 못 뛰었지만 엔트리에 들어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후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은 허도환은 이번에 자신의 의지로 팀을 또 옮겼다. 2년 총액 4억원 조건으로 LG 유니폼을 입었다. 베테랑 포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2023년 LG가 무려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을 풀 때도 함께했다. 3번째 우승. 각기 다른 팀에서 3번 우승한 선수는 최훈재(LG·해태·두산), 박종호(LG·현대·삼성), 심정수(OB·현대·삼성)에 이어 4번째였다. 통산 3사 구단에서 모두 우승한 것은 허도환이 최초. SK가 SSG로 인수됐으니 허도환은 리그의 유일한 통신 3사 우승 선수로 남을 듯하다. 
SK 시절 허도환. 2018.08.16 /OSEN DB
KT 시절 허도환. 2021.06.27 /ksl0919@osen.co.kr
지난해를 끝으로 LG의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된 허도환은 18년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통산 성적은 885경기 타율 2할9리(1515타수 316안타) 13홈런 142타점. 타격은 약하지만 안정된 수비와 투수 리드, 남다른 친화력으로 18년간 6개 팀에서 뛰었다. 소속 기간 중 구단 인수로 팀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 최익성과 함께 가장 많은 팀에서 뛴 선수로 남게 됐다. 삼성에만 두 번 몸담은 최익성이 이적 횟수는 6번으로 가장 많지만 허도환은 방출 이후 육성선수, 트레이드, 2차 드래프트, FA 등 다양한 형태로 팀을 옮겼다. 그만큼 현장의 수요가 있었기에 18년을 롱런할 수 있었다. 
허도환은 “주연은 짧고, 조연의 시간이 길었지만 내 인생의 한 챕터를 멋있게 보냈다고 생각한다. 우승을 세 번 했는데 한 팀이 아니라 전부 다른 팀에서 한 것도 행운이었다. 좋은 경험이었다”며 “2014년 그때 주전을 더 했더라면 지금보다 빨리 은퇴하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했고, 여러 팀을 다니며 각 팀의 문화와 운동 스타일, 프런트 색깔을 다양하게 보고 배웠다. 그렇게 하다 보니 생각보다 야구를 오래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기회를 준 모든 감독님들과 코치님들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제는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6개 팀에서 뛴 경험은 해설위원으로서 강점이 될 것이다. 한화에서 뛸 때부터 해설에 관심이 있었다는 허도환은 “넓은 관점에서 야구 공부를 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책도 많이 읽으면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며 “선수 때 잘하든 못하든 항상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했다. 이제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데 팬분들께 기분 좋게 웃으며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야구장에서 팬들과 새로운 모습으로 만남을 기대했다.
LG 시절 허도환. 2024.08.16 / ksl0919@osen.co.kr
허도환 해설위원. /MBC스포츠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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