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너의 계절에’가 상징적 사물과 공간을 기억의 장치로 삼아 조성희 작가 특유의 감성 서사를 완성해가고 있다.
MBC 금토드라마 ‘찬란한 너의 계절에’(기획 남궁성우, 극본 조성희, 연출 정상희, 김영재)가 사물과 장소를 단순한 소품을 넘어 인물의 감정을 설계하는 ‘기억의 장치’로 확장시키며 서사의 밀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여기에 연결된 인물들의 대사를 유의미하게 배치해, 시청자들이 등장하는 사물과 공간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해석하도록 만든다. 이에 ‘찬너계’ 속 오브제에 담긴 인물간 서사를 되짚어봤다.
◆ ‘제라늄’ 한 송이와 ‘메멘토 모리’에 담긴 의미

먼저 선우찬이 카페 ‘쉼’으로 가져온 제라늄 한 송이는 겨울에 멈춰 있던 송하란(이성경 분)의 감정을 비추는 은유적 장치로 등장한다. 한강에서 꺾인 채 선우찬(채종협 분)에게 발견된 꽃은 물컵에 담겨 뿌리를 내렸다. 흙으로 옮겨 심어진 제라늄이 흙몸살을 겪고 다시 꽃을 피워내는 이 과정은 스스로를 겨울에 가둔 채 버티고 있던 송하란의 상태와 맞닿아 있다. 특히 제라늄의 꽃말인 ‘기억’과 ‘결심’, ‘그대가 있기에 행복합니다’는 하란의 멈춰 있던 시간과 찬의 다짐을 교차시키며, 두 사람의 사랑이 ‘쌍방 구원’의 서사로 확장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반면 선우찬의 몸에 폭발의 흔적으로 남은 흉터 사이에 새겨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타투는 송하란이라는 존재로 인해 완성된 삶의 선택이자, 후회 없이 살아가겠다는 그의 다짐을 의미한다. 7년 전 폭발 사고 이후 송하란의 목소리와 함께 눈을 뜬 선우찬은 “관뚜껑 덮을 때 후회 없이 살자”는 다짐과 함께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제라늄과 메멘토 모리는 서로 다른 상처를 품은 두 사람을 한 지점으로 이끌며, 찬란 로맨스의 서막을 올렸다.
◆ 멈춘 시간 위에 선 송하란과 선우찬
잠수교는 선우찬과 송하란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사적 공간이다. 7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선우찬은 이곳에서 송하란을 발견했고,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같은 시각, 잠수교에 울려 퍼진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를 들은 송하란 역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강혁찬(권도형 분)을 떠올리며 멈춰 섰다.
7년 만에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3개월이라는 기한을 두고 동네 친구가 되었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란과 가까워질수록 선우찬에게는 이명과 시야 이상 등 트리거 반응이 반복되고, 기억 속 또 다른 빈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찰랑이는 소리와 함께 스쳐 가는 낯선 장면들은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진실의 존재를 암시한다.
◆ '치매 의심' 김나나가 쥔 열쇠와 침묵의 시간
김나나(이미숙 분)의 열쇠 역시 의미심장하다. 지속적인 건망증과 건강 이상을 느낀 김나나는 스스로 치매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세 손녀들에게는 이를 숨긴 채 조용히 주변을 정리해 나간다. 특히 4회에서 자신의 사무실 금고 열쇠를 응시하던 그녀의 눈빛은 무언의 결단을 예고했다. 그 열쇠는 세 손녀를 홀로 지켜온 할머니이자, 1세대 디자이너로 살아온 김나나의 치열했던 시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김나나와 박만재(강석우 분)의 재회 서사 속에서 열쇠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치로 활용되며, 김나나의 선택과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킨다.
이처럼 ‘찬란한 너의 계절에’는 사물과 공간을 정서적 매개체로 활용해 인물 간의 관계성과 서사를 더욱 견고하게 구축한다.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조성희 작가의 섬세한 필력과 이를 영상과 음악으로 뒷받침하는 정상희 감독의 감각적 연출, 그리고 장면의 여운을 배가시키는 OST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찬너계’만의 고유한 정서를 한층 깊이 있게 확장하고 있다. 사물과 공간에 축적된 감정의 단서들이 결국 어떤 결말을 완성하게 될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의 구조는 드라마의 재미 그 이상을 기대하게 만든다. /kangsj@osen.co.kr
[사진] MBC ‘찬란한 너의 계절에’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