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4할의 전설’ 백인천 전 LG 트윈스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뇌경색으로 장기간 투병 중이었던 고인은 최근 병세가 악화됐고, 14일 오전 6시 30분께 충남 천안에 거주하고 있던 곳에서 향년 84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고인은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나 8‧15해방 뒤, 부친의 고향인 평안북도 철산에서 살다가 6‧25 동란 전에 월남했다. 서울 효제초등학교를 나와 성동중 1학년 때 야구를 시작, 경동중으로 전학한 다음 경동고 시절 초고교급 선수로 이름을 날렸고, 1961년 농협에 입단, 그해 국가대표 포수로 첫 발탁 돼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고인은 1962년 일본 프로야구 다이요 훼일즈에 입단, 1974년 니혼햄 파이터스, 1975년 다이헤이요 라이온스로 이적했고, 그해에 퍼시픽리그 타격왕(3할 1푼 9리 2모)에 올랐다. 고인은 그후 롯데 오리온스(1977~1980년), 긴테쓰 버팔로즈(1981년)를 끝으로 일본 프로무대를 접고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 즈음해 귀국, 초대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한국 프로야구 첫해에 고인은 4할 1푼 2리라는, 한국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4할대 타율을 기록, 전설적인 존재로 각인됐다. 고인은 일본프로야구 19년, 한국 프로야구 3년(MBC 청룡 1년+삼미 슈퍼스타즈 2년) 등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만 22년간 영위했다.
가정사로 순탄치 않은 삶을 이어가던 고인은 1990년 LG 트윈스 창단 감독으로 다시 지휘봉을 잡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1996년 삼성 라이온즈, 2002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역임했던 고인은 1997년 삼성 감독 시절 처음으로 뇌경색 증상이 나타나 한때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지도자 생활을 그만둔 뒤 고인은 그동안 사기를 당해 생활에 고초를 겪었고, 4차례의 뇌경색, 한 차례의 뇌출혈로 장기간 투병 생활을 했으나 초인적인 의지로 버텨왔다. 근년엔 입원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으나 3월 초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명언으로도 유명한 요기 베라를 좋아했던 고인은 현역 시절 ‘투혼의 야구’를 부르짖으며 한국 프로야구에 정신력과 투쟁심을 심어줬다는 평을 들었다. 고인과 마지막까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던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은 “고인은 어렸을 적 일본으로 건너간 프로바둑기사 조치훈과 닮은 꼴이다. 두 사람 모두 목숨을 걸고 싸운 진정한 승부사였다”며 고인을 기렸다.
백인천 전 감독이 세상을 등지면서 1982년 한국 프로야구 6개 구단 초대 감독 가운데 생존한 이는 이제 박영길(85)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유일하다.
한편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고인의 장례를 KBO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고인의 빈소는 천안 단국대병원에 마련됐다. 발인 일정은 미국에 거주중인 동생이 귀국한 다음 결정할 예정이다.
사진 위=2016년 올스타전 시구에 나선 고 백인천 전 감독의 생전 모습.
사진 중간=1982년 1월 26일 MBC 청룡(LG 트윈스 전신) 창단식 때의 고인(왼쪽)
사진 아래=1961년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발탁된 고인(뒷줄 왼쪽에서 4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