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는 탁월한 전략가다. 폐지 위기의 예능 프로그램을 '국민 예능'의 칭호를 얻게까지 성공시켰을 뿐 아니라, 그 인기를 11년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해 왔다. 대한민국 역사상 어떤 예능 프로그램도 해오지 못한 일을 해오고 있는 것.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11주년이 되는 날이었던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백범로 서강대학교 이냐시오관 강당에서 열린 ''무한도전'에서 배우는 삶의 자세''라는 강연에서 '무한도전'이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분석하고, 밝혀지지 않았던 고민과 비화 등을 공개했다. 다음은 그의 강연의 일부를 정리한 내용이다.
# 10년간 '무한도전' 본방을 본 적이 없다
제일 고민이 이 10년 지난 '무한도전'을 어떻게 더 끌고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명품으로 가져가고 싶을 때도 있고, 대중적인 브랜드로 가져가고 싶을 때가 있고 다양한 색깔로 가져가고 싶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브랜드 관리가 안 되는 게 있다. 토요일에 95분, 100분 편성 일주일 동안 제작하는 시간 자체가 너무 짧다. 아웃풋을 만드는 데 있어 적어도 2주는 걸려야 하는데 매주 위클리로 방송을 하다보니, 어떨 때는 우리도 부끄러워 못 본다.
개인적으로 11년 전부터 본방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보면 첫 컷부터, 첫 자막부터 아쉬움이 보인다. 부끄러워 못 보겠다. 2009년부터 후배들한테 자막 편집을 넘긴 후에는 내가 하면 더 잘했을텐데, 저걸 왜 저렇게 했지,하는 아쉬움이 들어서, 어차피 방송 한 번 나가면 끝이다. 그 책임은 책임PD인 내가 져야 하는 것이다. 나가면 나가는대로 두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 '무한도전'의 시작은 불만이었다
('무모한 도전' 당시) 멤버들과 내가 공통으로 느낀 게 어떤 불만이었냐면, 웃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공감하고 방송할 만한 기회를 왜 못 얻을까, 하는 것이었다. 노홍철이 그 얘기를 하더라 상당히 재밌을 것 같아 왔는데 게스트 위주의 진행이 된다. 게스트의 새 앨범이 우리 마음가짐보다 중요하다보니, 가끔 우리 집에 손님이 놀러왔을 때 안방 내주고 거실에서 쪽잠자는 느낌이라고 하더라. 녹화 분위기 자체를. 그렇다면 시간도 많지 않을거고 안 주어질 수 있으니 남은 기간 동안 진정한 예능에 대해 실험을 해보자고 했다.
멤버들과 약속한 것은 앞으로 큰 이유 없이 게스트 부르지 않겠다. 우리 위주로 가되 우리도 프로그램을 위해 좀 더 헌신을 하곘다고 약속을 받았다. 어차피 얼굴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땀이 보이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 당시 6시간 정도 녹화시간을 늘렸다. 6시간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짧은 시간이다. 요즘엔 18시간이 한 회가 안될 때가 많다. 당시 6시간 늘렸다고 여러 MC들이 저희에게 불만을 표현했다. (생략) 당시 예능에 대한 비판들을 들여다 보면 그런 기사가 많았다. 예능프로그램이 친한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다 끝나면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치 월급을 가져간다. 너무 편한 직업으로 묘사가 됐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지금도 멤버들이 목요일 전날 밤에 잠을 못 자고 온다. '내일 어떻게 하지?' 하고 온다. 뭐 할지도 모르면서. 그러다 대기실에서 서로 얼굴보고 안심하고 녹화 들어가는 분위기다.
#예능 이상향 실현을 위해 '무한도전'을 바꾸다
(예능 프로그램의 현실에 대한) 여러 불만들을 모아 이걸 표출해보자. 프로그램에 녹여보자 했다. '무한도전이 어떤 프로그램이면 좋겠어?' 멤버들이 지나가는 말로 던진 아이디어를 넣었다. 오프닝 코너를 넣고, 앙케이트를 넣었다. 그러다 보면 본인도 당황스러운 거다. '얘기 하라고 해서 했는데 진짜 하면 어떡하느냐'고 하더라. 재밌어 보여서 한 거야. 안 되면 편집하지 뭐(라고 했다.)
스튜디오에 준비된 구성이 하나도 없었다. 멤버들의 아이디어를 넣어서 하다보니 현장에서 멤버들의 태도가 바뀌더라. PD라는 직업 자체가 너무나 외로운 직업이다. 모든 일에 결정을 내려야 그 다음 스탭으로 진행이 된다. 그런데 현장에서 동료 PD 여섯 명이 생긴 기분이었다. 어떡하지? 할 때마다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여러 의견들을 수렴해 '무한도전'에 녹이려고 노력했다. 다른 걸 다 떠나 예능을 어떻게 그려야 할 지에 대한 이상향을 그려보자는 합의를 했다. 그래서 우리가 2006년 5월 6일 독립 프로그램으로 출발을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11년은 프로그램이 한 주 한 주, 누구를 섭외해 방송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능프로그램의 질서, 방송 안에서 예능이라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만들어갈까에 대한 고민을 한 11년이었다.
# '무한도전' 네트워크를 꿈꾸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한도전'의 허구화다. 토요일 저녁에 나가는 허구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을 위해 존재하고 여기에 대한 스핀오프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다양한 윈도우를 통해 제작되면 훨씬 '무한도전' 네트워크가 커질 것 같다.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가 네트워크가 되면 좋겠다. '무한도전' 채널이 생겨도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나 제작진이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30분 방송에 매몰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1년에 50여 편을 해야하는, 90분을 만들기에 일주일은 너무 짧다. 아쉬움이 항상 크다. 인터넷용, 스크린용에 대한 주장을 한 게 2007년이다. 10년이 됐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는 건, 발목을 잡는 건 결국 어쩔 수 없이 '무한도전' 방송이다.
2007년 말에 우리가 사장님한테 부탁한 것 하나가 '무한도전' 1년에 3개월씩만 쉬었으면 좋겠다였다. 그 3개월간 쉬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즉흥적으로 낸 게 뭐냐면 3개월만 쉬면 쉬는 첫 주에 7명이 배낭을 메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찾아가겠다.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가서 10톤짜리 돌을 앞에 두고 너희 하루종일 저녁 6까지 돌을 10m만 움직이면 일주일 이집트 일정 취소할테니, 한 번 해봐라. 이랬을 때 이들의 머리에서 인류 진화와 문명의 발전이 나오지 않을까. 단계를 벗어난 시도를 하고 싶었다. 그 때 놀란 게 그 얘기를 했더니 유재석 씨가 '그러면 나도 모든 프로그램을 접겠다. '무도'와 함께 떠나겠다'고 해서 다들 마음이 모였다. 한 분만 달랐다. 누군지 말 안 해도 아실 것 같은데(웃음) 결국 2008년 초에 회사에서 그 약속 못 지켜서 (실현은 안 됐다). /eujenej@osen.co.kr
[사진] OSEN DB. '무한도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