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달아도 되는가?".
한화 거물 외인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34)는 깜짝 놀랐다. 올 시즌 한화에서 새출발하는 그의 등번호가 42번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한화는 마지막 외국인선수의 등번호로 42번을 비워놓았고, 비야누에바가 자연스럽게 이 번호를 물려받았다. 그런데 비야누에바는 한화 구단 관계자에게 "이 번호를 정말 달아도 되느냐"고 물으며 "42번을 쓰게 되다니 신기하다. 영광스런 번호"라고 기뻐했다.
이유가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등번호 42번이 30개 전 구단 통틀어 영구결번이다. 지난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하며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로 인종 장벽을 허문 재키 로빈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함으로, 그가 데뷔한 지 50주년이던 1997년 지정됐다. 메이저리그는 매년 4월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기념한다.
그 이전까지 42번을 쓰던 현역 선수 중 마지막으로 은퇴한 뉴욕 양키스 마리아노 리베라의 2013시즌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서 42번 등번호 선수는 이제 없다. 비야누에바는 "로빈슨의 번호를 쓰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 미국에서 쓸 수 없는 번호"라고 강조했다. 한화 구단에선 "한국에선 42번을 써도 되니 문제없다"고 했고, 비야누에바가 기분 좋게 번호를 받았다.
한화 관계자는 "이전에도 42번을 사용한 외국인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비야누에바처럼 로빈슨을 이야기하며 영광이라고 하는 선수는 처음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지만 미국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자라서인지 상당히 스마트한 기질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야누에바는 메이저리그 선수협회에서 도미니카공화국 선수 대표 임원을 맡을 정도로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관련 활동에 있어서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보통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과 달리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페이퍼 워크도 능숙하게 소화한다.
재미 있는 일화는 또 있다. 한화 관계자는 비야누에바에게 "한국에선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날 때 미국처럼 주머니에 손 넣고 악수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 이후 비야누에바는 만나는 한국 사람들마다 모자 벗어 인사할 뿐만 아니라 두 손을 공손히 배꼽에 모아놓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그 정도로 할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문화를 존중하고 따르려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인성이 바르고 똑똑한 선수라 더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11년 경력의 베테랑 선수답게 비야누에바의 행동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묻어난다. /waw@osen.co.kr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