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영건 이원준(20)은 지난 10월 신체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제2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23세 이하) 대표팀에 소집돼 먼 이국인 콜롬비아에 있었다. 이원준은 “이렇게 힘들었던 이동은 처음이었다”고 혀를 내두른다. 게다가 많이 던지기도 했다. 실질적 에이스였다.
한국에서 콜롬비아까지 직항 비행기는 없다. 몇 차례 경유를 해야 했다. 미국 애틀랜타에 도착해 남미로 가는 비행기가 많은 마이애미로 이동했다. 경유는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마이애미에서 콜롬비아로 들어왔고, 경기가 열리는 장소까지 또 이동을 해야 했다. 이원준은 “국제공항에서 경기장까지 버스로 7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군용기를 탔다. 짐은 우리가 다 옮겨야 했다”고 떠올렸다.
원래 힘든 일정에서 많은 기억과 추억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원준도 마찬가지였다. 그 고된 일정에서 얻은 것이 많았다고 되새긴다. 이원준은 “도미니카나 남미 선수들은 헛스윙이 많았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참 컨택을 잘하더라. 152㎞가 나오는데도 좀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았다. 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대회 내내 했다”고 말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SK의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 합류한 이원준은 그 깨달음을 곧바로 실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원준은 “이번 캠프에서는 세게 던지지 말라고 하시더라. 대신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는 구종이 뭔지 연구하고 있다. 포크볼이나 체인지업을 연습하고 있는데 이리저리 그립을 맞춰보고 있는 중”이라고 웃었다.
야탑고를 졸업하고 SK의 2017년 1차 지명을 받은 이원준은 구단이 주목하는 유망주다. 염경엽 감독은 “이원준이 6번째”라고 말한다. 1군 1~5선발 다음에 선발로 대기하는 선수라는 뜻이다. 염 감독은 “지난 2년간 이원준이 구속을 올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이제 그 틀이 만들어졌으니 세부적으로 다듬으면 된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토대를 만든 만큼 본격적으로 뻗어갈 일만 남았다는 게 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기대다.
실제 이원준은 프로 입단 후 구속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워낙 하드웨어가 좋고,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했다. 이원준은 “입단 당시 평균 구속은 141~142㎞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146㎞ 정도까지 올랐다”면서 지난 2년을 돌아봤다. 이제 150㎞라는 상징적인 숫자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넘나든다. 올해는 국제대회까지 100이닝 이상을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부상도 없었다. 이원준이 뽑는 2018년의 가장 큰 성과다.
이제는 그 상승세가 1군에서의 성적으로 나타날 때가 됐다. 올해는 그 기회를 놓쳤다. 몇몇 기회가 있긴 했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구단 관계자들은 “점수차가 크거나, 상황에 여유가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항상 팀이 뭔가 쫓기는 상황이나 상대의 기세가 좋은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고 안타까워한다. 운이 조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원준은 그것은 핑계라고 생각한다.
이원준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 내 공을 던지지 못한 내 문제”라고 잘라 말하면서 “1군 등판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뭐 특별한 것이 있겠나’라고 올라갔는데 확실히 다른 게 있었다. 롯데와의 경기에서 분위기를 넘겨줬다. 첫 단추를 잘못 뀄던 셈”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 쓰라린 경험은 여전히 이원준의 머리와 심장에 남아 있었다. 다시는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뭉쳐 있다.
이원준은 2019년을 ‘6선발’로 시작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6’이라는 숫자에 머물 수는 없다. 이원준은 “우리 팀의 선발 선배님들이 5선발까지 워낙 확실하다”고 현실을 짚으면서도 “선발로 뛰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차근차근 올라가려면 중간도 소화해야 한다. 셋포지션이 약해 이 부분을 많이 보완할 것”이라고 자신의 구상을 드러냈다. 이원준이 내년에 자신을 감싸고 있는 숫자를 좀 더 앞자리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자체로 SK 마운드는 강해짐을 의미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