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가야겠어” 둘째 태어난지 2주 만에 도미니카로...롯데 출신 복덩이는 어떤 깨달음 얻었나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24.02.07 14: 40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이가 태어난지 2주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KT 위즈 내야수 오윤석(32)은 무려 한 달 넘게 도미니카공화국에 머물고 돌아왔다. 우연했던 기회가 오윤석에게는 선물 같은 순간들로 찾아왔다.
오윤석은  2021시즌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앞두고 포수 김준태와 함께 트레이드로 합류했다. KT 이적 직후 64경기 타율 2할5푼3리(95타수 24안타) 2홈런 11타점 OPS .751의 성적을 남겼다. 눈에 띄는 성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 주전 2루수 박경수의 체력부담을 덜어주는 등 알토란 같이 활약했다. KT 내야진 뎁스를 늘려줬고 통합우승에 적지 않은 힘을 보탰다.
2020시즌 롯데에서 힛 포더 사이클을 기록하는 등 타율 63경기 2할9푼8리(168타수 50안타) 4홈런 32타점 OPS .811의 기록을 남기며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준 뒤 KT에서 꾸준히 출장 기회를 잡고 1군 멤버로 자리잡았다.

훌리오 프랑코 코치와 오윤석, 그리고 도미니카행을 도와준 이조일 통역 / 오윤석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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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를 졸업하고 2014년 롯데에 육성선수로 입단하는 등 커리어 자체가 순탄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묵묵히 노력하고 야구를 진중하게 대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그러나 주전으로 확실하게 떠오르지 못했다. 오윤석은 냉정히 말해 여전히 불혹의 2루수 박경수에게 바통을 완전히 넘겨받지 못했다. 이호연 천성호 등 젊은 내야수들과도 경쟁을 펼쳐야 한다. 
주전으로 도약하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 겨울에도 고민했다. 그리고 고민은 순식간에 끝났고 그 순간의 끝에 손에 쥐어진 것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떠나는 비행기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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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한 게 도미니카로 떠난 1차적인 목표였다. 과거 롯데에서 사제의 연을 맺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전설적인 강타자로 군림했던 훌리오 프랑코 코치와 우연치 않게 다시 인연이 닿았다. 오윤석은 “그동안 비시즌에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훈련을 하다가 이번에는 해외를 나갔다. 지난 겨울에 통역을 하던 친구가 도미니카에 놀러갔는데 프랑코 코치와 얘기를 하다가 제 얘기가 나왔다.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서 가볍게 야구 얘기도 했는데 훈련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라면서 “도미니카로 가서 훈련할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가볍게 시작된 얘기가 심도 깊게 이어졌다. 프랑코 코치님께 다양한 얘기들을 해주시면서 설레는 말들을 해주셨다. 그래서 고민도 안하고 다음날 비행기표를 끊고 날짜를 정해서 떠났다”라고 밝혔다.
오윤석이 도미니카에 머문 기간은 꽤 길었다. 12월15일에 출국해서 1월20일에 귀국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도미니카라는 낯선 나라에서 보냈다. 오윤석 입장에서는 선뜻 떠나기 힘든 시점이이고 했다. 당시 오윤석은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2주 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망설이지 않고 얘기했다. 그는 “코치님과 통역을 했던 친구가 아니었으면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것 같았다. 너무 큰 기회라고 생각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라면서 “아내에게도 ‘갔다 와도 되겠냐’라고 묻지 않고 ‘가야겠다’라고 말했다. 사실 둘째가 태어난지 2주 밖에 안됐었는데 아내도 고민도 하지 않고 갔다 오라고 했다.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라고 전했다.
도미니카에서 보낸 시간들은 선물 같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는 “정말 행복한 비시즌이었다. 프로 생활을 10년 동안 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다. 야구 인생 뿐만이 아니라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여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왜 오윤석은 이렇게 감탄을 했을까. 그는 “지구 반대편의 야구, 다른 세계의 야구를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신기했고 좋은 경험들을 정말 많이 했다. 다른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됐다”라면서 “윈터리그도 많이 봤고 한국에서 뛰었던 선수들도 만나봤고 또 거기서 일하는 한국 분도 계셨는데 제가 모르는 얘기들도 많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인프라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다. 그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중남미 지역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을 아예 몰랐다. 그런데 정말 운 좋게 기회가 돼서 아카데미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훈련하는 것, 육성하는 것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라면서 “외국 다녀오신 선배들이 왜 그렇게 투자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지 알겠더라. 직접 보니까 말문이 막혔고 생각 그 이상이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가슴 설레는 비시즌을 보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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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코치의 인프라도 오윤석에게 큰 도움이 됐다. 프랑코 코치는 1982년 메이저리그에서 데뷔한 뒤 올스타 3회, 실버슬러거 5회, 타격와 1회, 올스타전 MVP 1회 등 굵직한 커리어를 쌓았다. 2000년 삼성에서 132경기 타율 3할2푼7리(477타수 156안타) 22홈런 110타점의 성적을 거뒀다. 당시 공식 나이 41세였다. 이후에도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뒤 40대 후반까지 경쟁력 있는 커리어를 보냈다. 이후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와 2020년까지 타격 코치 커리어를 이어갔다. 오윤석이 롯데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프랑코 코치와 함께하면서 기량과 멘탈을 단련했다. 그 인연이 오윤석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도미니카에서 프랑코 코치의 인프라에 놀랐고 도움도 톡톡히 받았다.
그는 “진짜 훌륭하신 코치님에게 타격적인 면을 많이 배우려고 떠난 것이었다. 그런데 코치님께서 워낙 영향력이 있으신 분이라서 코치님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연결이 됐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해주셔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프랑코 코치가 숙식을 모두 제공해줬고 이 과정에서도 배울 점이 있었다. 그는 “코치님 집에서 먹고 자고 했다. 가족처럼 한 달 넘게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라면서 “훈련을 할 때 코치님 가족분들이 모두 도와주셨다. 그 마을에서는 서로서로 도와주더라. 캠프를 시작하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도미니카에서는 야구를 즐긴다는 것을 봤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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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야구를 준비하는 과정도 세분화 되어 있더라. 다양한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제가 생존만을 위해서 제 자신을 너무 억누른 채 야구를 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저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았다”라고 했다.  
눈이 뜨이고 세계관이 확장됐다. 도미니카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는 내내 당시의 설렜던 기억이 말 끝에 묻어나왔다. 자신의 야구관도 많이 바뀌게 됐다. 그는 “나는 너무 한정된 야구만 해서 여기에 얽매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너무 감사하고 큰 경험을 하고 왔다”라면서 “이제는 야구를 좀 더 즐겁게 하고 실수를 해도 얽매이지 않고 다음 해야할 것에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앞으로 주전을 향한 목표는 굳건하다.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미니카에서 보낸 한 달 넘는 시간이 자신을 달라지게 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는 “궁극적인 목표는 주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 목표다. 그러나 목표는 똑같아도 여기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제가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고 즐기자는 생각들을 하다 보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라며 “올해는 100경기 이상도 뛰고 싶고 더 좋은 성적을 내보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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