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겐 메이저리그 적응 기간도 필요하지 않는 것 같다. 시범경기 데뷔와 함께 4경기 연속 안타에 첫 볼넷과 도루로 펄펄 날았다.
이정후는 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굿이어의 굿이어볼파크에서 벌어진 2024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시범경기에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 2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 1볼넷 1도루로 멀티 출루 활약을 펼쳤다.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3타수 1안타 1득점)을 시작으로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3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 2일 텍사스 레인저스전(3타수 1안타)에 이어 데뷔 후 4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펼친 이정후는 시범경기 타율 4할5푼5리(11타수 5안타)를 마크했다. 볼넷 1개를 더해 출루율은 5할.
전날(3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 결장하며 휴식을 취한 이정후는 이날 원정경기에 나섰다.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중견수) 마르코 루시아노(지명타자)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1루수) J.D. 데이비스(3루수) 루이스 마토스(우익수) 블레이크 세이볼(좌익수) 조이 바트(중견수) 닉 아메드(유격수) 도노반 월튼(2루수) 순으로 선발 라인업을 내세웠다. 선발투수는 조던 힉스.
이날 이정후의 첫 상대 투수는 클리블랜드 우완 선발 태너 바이비(25). 지난해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 25경기(142이닝) 10승4패 평균자책점 2.98 탈삼진 141개 WHIP 1.18로 활약하며 선발 한 자리를 꿰찬 투수. 평균 94.9마일(152.7km) 포심 패스트볼에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구사하는 바이비는 9이닝당 볼넷 2.9개로 제구력도 안정됐다.
그런 투수를 상대로 1회 첫 타석부터 볼넷을 얻어냈다. 1~3구 연속 볼을 골라낸 이정후는 4구째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뒤 5구째 공이 존을 벗어나 1루로 걸어나갔다. 시범경기 첫 볼넷. 바이비는 5개의 공 모두 94마일(151.3km) 강속구로 승부했지만 이정후는 배트 한 번 내지 않고 침착하게 볼넷 출루에 성공했다.
이어진 주루 플레이에서도 이정후의 움직임이 상대 배터리를 성가시게 했다. 바이비는 2번 루시아노 타석에서 3구째 공을 던지기 전에 1루로 기습 견제를 했다. 루시아노를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 웨이드 주니어 타석에선 초구에 앞서 1루로 또 견제했다. 웨이드 주니어의 우중월 투런 홈런이 터지면서 이정후는 팀의 첫 득점을 올렸다. 시범경기 3득점째.
2회에는 2사 1,2루 찬스가 이정후 앞에 왔다. 클리블랜드는 이정후가 타석에 들어서자 선발 바이비를 내리며 우완 헌터 스탠리를 올렸다. 이에 이정후는 바뀐 투수의 초구 공략에 나섰다. 93마일(149.7km) 패스트볼을 때려 1루 쪽으로 강습 타구를 날렸다.
잘 맞은 타구가 원바운드로 1루수 조쉬 네일러를 맞고 튀어올랐다. 타구가 투수 쪽으로 굴절되면서 스탠리가 공을 잡아 1루수 네일러에게 다시 토스했다. 1루 땅볼 아웃이 되며 타점 기회를 놓쳤지만 타구의 질은 아주 좋았다.
결국 4회 2사 1,2루 찬스에서 적시타가 나왔다. 클리블랜드 3년차 우완 헌터 개디스를 상대로 초구 95마일(152.9km) 패스트볼을 골라낸 이정후는 2구째 81마일(130.4km) 변화구를 스트라이크로 지켜본 이정후는 3구째 95마일(152.9km) 패스트볼에 백네트 쪽 파울을 치면서 1-2 불리한 카운트에 몰렸다.
하지만 4구째 87마일(140.0km) 변화구에 1루측 날카로운 파울 타구를 쳤고, 이어 5구째 80마일(128.7km) 변화구도 백네트로 향하는 파울을 만들어냈다. 연속 파울 커트로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이정후는 6구째 79마일(127.1km) 체인지업을 공략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생산했다. 2루수 옆을 지나 우익수 앞으로 향하는 안타. 2루 주자 세이볼을 홈에 불러들인 1타점 적시타였다. 샌프란시스코에 3-2 리드를 가져온 한 방으로 이정후의 시범경기 2타점째.
이정후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계속된 2사 1,3루 찬스에서 1루 주자로 또 한 번 움직였다. 후속 루시아노 타석에서 바뀐 투수인 우완 트레이 벤턴을 상대로 도루에 성공했다. 3구째에 2루로 스타트를 끊은 이정후는 클리블랜드 포수 데이비드 프라이의 송구에 앞서 2루를 통과했다. 여유 있게 벤트레그 슬라이딩으로 2루에 먼저 들어갔다. 시범경기 첫 도루.
후속타가 터지지 않아 잔루로 남은 이정후는 5회 가브리엘 아리아스의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성 뜬공 타구를 아웃 처리했다. 머리 위로 넘어가는 타구로 잡기 까다로웠지만 이정후가 빠르게 움직여 워닝 트랙 앞에서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이정후는 6회 타석에서 대타 타일러 피츠제럴드로 교체돼 경기를 마쳤다. 이날 경기는 샌프란시스코가 6-5로 승리하며 시범경기 전적 2승5패2무가 됐다. 1회 웨이드 주니어의 투런포, 6회 닉 아메드의 솔로포에 이어 9회 이스마엘 뭉기아가 결승 솔로포를 터뜨리며 홈런 3방으로 웃었다. 아메드가 2경기 연속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1타점, 교체로 나온 뭉기아가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샌프란시스코 선발투수 힉스는 2⅔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첫 등판이었던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1⅔이닝 2피안타 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2실점)에 이어 2경기 연속 고전했다. 힉스의 시범경기 평균자책점은 8.31이다.
다음은 이정후와 취재진의 일문일답.
-시범경기 4경기 연속 안타를 쳤는데 경기 소감은.
▲ 똑같다. 재미있게 경기 잘한 것 같다.
-1회 첫 볼넷도 얻고, 4회 첫 도루도 성공했는데.
▲ 볼넷 같은 경우는 공을 잘 골랐다기보다 볼로 와서 볼넷이 된 것이다. 도루는 그린라이트여서 뛰었다.
-1회부터 출루 후 도루 타이밍을 보는 것 같았는데. 견제구도 2개 있었다.
▲ 그렇다. 상대 투수도 나에 대한 정보가 없겠지만 나도 투수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처음 견제가 왔을 때 위험했다. 견제가 그렇게 빠를 줄 몰랐다. 또 1루에 물 뿌려놓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여서 진흙처럼 땅이 질었다. 그래서 1회에는 도루를 포기했고, (4회) 두 번째 나갔을 때는 (마크 홀버그) 1루 코치님이랑 얘기해서 뛰었다.
-한국에선 도루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 메이저리그는 도루를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이고, 나 또한 도루 욕심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도루를 안 해도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도루를 굳이 하다간 다칠 수도 있고, 팀 상황 자체가 내 뒤에 (김)하성이형, (박)병호 선배님 등 워낙 좋은 타자들이 있었다. 내가 굳이 1루에서 2루로 뛰어 죽으면 팀으로 볼 때 안 좋은 상황이 많이 연출됐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많이 뛰어야 하는 상황이고, 나도 개인적으로 뛰고 싶은 욕심이 있다. (수술을 받은) 발목 같은 경우도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지금 애리조나의 좋은 날씨에서 계속 운동하는 게 발목에도 좋은 것 같다. 올 시즌에는 기회가 된다면 많이 뛰고 싶다.
-상대 선발투수가 제구가 뛰어난 투수로 알려졌는데 볼넷을 얻어냈다.
▲ 첫 타석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2회 땅볼 아웃되긴 했지만 잘 맞은 타구였고, 4회 안타도 만들어냈는데.
▲ (2회 타구도) 잘 맞았다. 야수 정면으로 갔지만 괜찮았다. (4회 안타는) 체인지업을 친 것이었다. 그 전에 체인지업을 하나 파울로 쳤다. 그 이전에 체인지업은 잘 들어온 공이었고, 안타 친 체인지업은 조금 높았다. 결국에는 야구가 공 높이 1~2개 싸움인데 그래서 안타가 된 것 같다.
-어제(3일) 김하성 집에서 고우석(이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오늘 경기(시애틀전)에서 김하성이 홈런을 쳤다.
▲ 하성이형 홈런 쳤어요? 역시 서로 좋은 기운이 왔다 갔다 한 것 같다(웃음). 어제 형이 김치찌개를 해주고, 고기도 구워줬다. 형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형이 동생들 위해 좋은 일 했으니 홈런을 친 것 같다. 형이 음식을 해줬으니 나도 열심히 해서 안타 치고, 타점 올리고, 상부상조한 것 같다.
-고우석도 오늘 경기에 나서는데(인터뷰 시점에는 등판하기 전).
▲ 우석이도 잘해야죠(웃음). 우석이도 우석이인데 하성이형은 나한테 있어 진짜 최고의 선배다. 한국에서부터 지금까지도 그렇고, 형 보고 많이 배웠다. 형이 좋은 말 많이 해줬고, 먼저 길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내가 좋은 대우로 메이저리그에 올 수 있었다. 나한테 있어 형은 정말 설명이 필요 없는 은인 같은 형이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내가 제일 존경하는 형이다.
-김하성이 해준 김치찌개는 어땠나.
▲ 진짜 맛있었다. 진짜 맛있었다. 나는 요리를 잘 안 하는데 형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난 그냥 맛있게 먹는 걸 잘한다. 형은 한식을 좋아하는데 난 딱히 가리진 않는다.
-미국에서 만나는 한국 선수들을 보면 느낌이 어떤가.
▲ 다른 팀에 있는 데도 뭔가 같은 팀 같다. 특히 하성이형은 같은 팀에서밖에 야구를 안 해봤다. 아직 운동장에서 서로 다른 유니폼 입고 만난 적은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아직 모르겠다. 밖에서 보거나 항상 대표팀에서 보거나 항상 같이 뛰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기를 하면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샌프란시스코가 FA 3루수 맷 채프먼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보강했는데.
▲ 기존에 뛰던 선수들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나도 팀에 처음 온 것이다. 여기서 1~2년을 뛴 선수였으면 무언가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처음 와서 팀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메이저리그 선수들 로스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모른다. 나보다는 형님들한테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웃음). 좋은 선수가 오면 좋은 거다.
-맞춤 제작한 헬멧은 도착했나.
▲ 아직 안 왔다. 계속 눌러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