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전은 디펜딩 챔피언의 ‘무덤’이었다… ‘앙리 들로네 트로피의 저주’는 깰 수 없는 UEFA 유로 징크스 [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24.07.04 08: 03

정녕 ‘앙리 들로네 트로피의 저주’란 말인가. 축배의 상징일진대, 오히려 우승의 망령이 들씌웠나 보다. 녹아웃 스테이지 첫판인 16강전 통과 좌절은 디펜딩 챔피언이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의 굴레인 듯싶다. UEFA(유럽축구연맹) 유러피언 풋볼 챔피언십 창설을 주창했던 앙리 들로네 UEFA 초대 회장은 저세상에서 ‘우승의 저주’를 어떻게 바라볼까?
UEFA 유로 무대가 16강이 펼치는 토너먼트로 접어들면, 유독 되풀이되는 징크스가 존재한다. 2016 프랑스 대회부터 2024 독일 대회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타난 전 대회 우승팀 16강 탈락이다.
8년에 걸쳐 벌어진 세 번의 대회에 불과한데, 웬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녹아웃 스테이지가 8강에서 16강으로 확대돼 열린 첫 대회가 유로 2016이니, 지금까지 빠짐없이 일어난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사진] 실망한 이탈리아 선수단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UEFA 유로’로 통칭하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은 피에르 들로네 UEFA 2대 회장의 주도로 1960년 프랑스에서 발원했다. 당시 명칭은 UEFA 유러피언 네이션스컵이었고, 4개 팀이 본선에 올라 자웅을 겨뤘다. 8년 뒤인 1968 이탈리아 대회 때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본선 마당에 나온 출전팀은 8개(1980 이탈리아)→ 16개(1996 잉글랜드)→ 24개(2016 프랑스)로 점차 늘어났다.
[사진]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바스토니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로 2016~유로 2024 잇달아 닥쳐온 망령, 전 대회 우승팀 결선 첫판 탈락 징크스
지난 2일, 우리나라 시각으로 3일 새벽 유로 2024 16강전 8경기가 모두 끝났다. 그룹 스테이지와 달리 이변의 물결은 거세지 않았다. 대부분 승리가 예상됐던 팀이 결선 첫 관문을 뚫고 8강전에 나갔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6월 20일 기준)에서 앞서는 팀이 거의 개가를 올렸다. 8경기 중 6경기가 이 같은 결과로 끝났다.
조별 라운드에서 유로 사상 최대 이변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던 조지아도 더는 돌풍을 이어 가지 못했다. 조별 라운드 F에서, 조지아는 포르투갈을 2-0으로 완파하는 대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FIFA 랭킹 74위 조지아가 까마득하게 68계단이나 앞선 6위 포르투갈을 무너뜨린 한판은 최다 격차 승리 부문의 맨 윗자리에 자리했다. 그랬던 조지아였건만 16강전에서 맞부닥친 8위 스페인에 1-4로 무너졌다.
하위 팀이 상위 팀을 잡은 2경기에 불과했다. 19위 스위스가 10위 이탈리아를 2-0으로 완파했고, 42위 튀르키예가 25위 오스트리아를 2-1로 꺾었다.
2경기 가운데 스위스-이탈리아전이 바로 디펜딩 챔피언 16강전 탈락이 재현된 한판이다. 2연패를 꿈꿨던 이탈리아였지만, 끝내 깰 수 없었던 전 대회 우승팀 몰락 징크스였다. 0-2! 단 한 번도 스위스 골문을 열어젖히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표]
비운(悲運)은 유로 2016에서 비롯했다. 본선 진출 티켓이 16장에서 24장으로 늘어난 첫 대회에서, 스페인이 첫 제물이 됐다. 2012 폴란드-우크라이나 대회에서 이탈리아를 4-0으로 대파하고 2연패의 마지막 한 점을 화려하게 찍었던 스페인이었거만 생각지 못한 앙리 들로네 트로피의 저주에 휩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4년 전 정상에 오르는 데 희생양으로 삼았던 이탈리아에 0-2로 패퇴했다. 물론, 녹아웃 스테이지 첫판인 16강전에서였다(표 참조).
그때만 해도 아무도 우승의 망령이 덮쳤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러나 4년 뒤, 정확하게 다시 닥쳐왔다. 이번엔 유로 2016에서 첫 정상에 오르며 앙리 들로네 트로피를 드높이 들어 올리는 기쁨을 만끽했던 포르투갈이 희생됐다. 11개국에서 분산 개최된 유로 2020에서, 벨기에에 0-1로 분패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결선 첫 관문인 16강전이었다.
그리고 또 4년 뒤, 이번 유로 2024에서도 다시 들이닥쳤다. 8년 전, 스페인을 망령의 제물로 바쳤던 이탈리아가 이번엔 자신이 저주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나락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지난 대회 우승팀엔, 16강전은 ‘무덤’이다. 더욱이 득점하지 못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이제 이 같은 명제는 ‘참’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과연 우승의 저주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4년 뒤에 벌어질 유로 2028에서, 유로 2024 챔피언은 과연 징크스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지 벌써 궁금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