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2024시즌 최고 히트 상품은 신인 내야수 황영묵(25)이다. 10개월 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될 때만 하더라도 ‘얼리픽’으로 평가된 황영묵이 이제는 한화의 ‘스틸픽’이 됐다. 스틸픽이란 상대적으로 낮은 순위에 뽑힌 선수가 예상을 뛰어넘는 활약을 할 때 붙여지는 수식어인데 올 시즌만 보면 황영묵이 최고 스틸픽이다.
한화는 지난해 9월 열린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전체 31순위로 황영묵을 뽑았다. 대학 1학년 때 중퇴 후 일찌감치 독립리그에서 뛰며 프로 진출을 준비한 ‘군필 내야수’로 즉시 전력 기대를 받았지만 예상보다 빠른 지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황영묵 스스로도 “예상보다 높은 지명 순위가 기분이 좋았다. 구단에서 저를 높이 평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만큼 값어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야 자원이 비교적 풍족한 한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외의 지명이었다. 정민혁 한화 스카우트팀장은 지명 직후 황영묵에 대해 “유격수, 2루, 3루 수비가 다 되는 선수다. 지금 현재 신인 중 타격 완성도가 제일 높다. 군대도 다녀왔고, 빠르게 즉시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는데 예상이 거의 맞아떨어졌다.
황영묵은 데뷔 첫 해부터 1군에서 주전급 선수로 자리잡았다. 순수 신인 선수 중 가장 많은 68경기에 나서 타율 3할1푼6리(209타수 66안타) 3홈런 28타점 34득점 14볼넷 31삼진 출루율 .363 장타율 .411 OPS .774로 활약 중이다.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경기를 뛰지 못한 채 2군에 내려갔지만 유격수 하주석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4월9일 다시 콜업된 뒤 2루수(37경기 28선발 258.2이닝), 유격수(31경기 23선발 199이닝), 3루수(3경기 3이닝)를 넘나들며 1군에 생존했다. 유격수로 기회를 잡은 뒤 5월말부터 2루수로 출장 비중을 높이고 있다. 지난달 16일부터 팀의 18경기 중 14경기를 선발 2루수로 나서며 주전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시즌 전부터 한화의 2루는 최대 격전지로 누가 주인이 될지 궁금증을 낳았다. 2021년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 정은원과 지난해 고졸 신인 역대 7번째 100안타(114개) 기록을 세운 문현빈에 골든글러브 2루수 부문 3회 수상자 안치홍까지 합류했다. 누가 주전이 돼도 이상할 게 없었고, 그때만 해도 황영묵은 내야 전천후 백업 요원으로 분류됐다.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문현빈이 주전 2루수로 낙점됐다. 정은원은 외야로, 안치홍은 1루로 들어가면서 포지션 교통 정리가 이뤄졌다. 하지만 문현빈이 2년 차 징크스에 시달리며 수비까지 흔들렸고, 정은원도 타격 부진으로 2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김경문 감독이 부임한 뒤 안치홍이 선발 2루수로 5경기 나섰지만 고정으로 기용하진 않은 채 황영묵의 비중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
지난 12일 대전 LG전에서 황영묵은 자신이 왜 한화의 주전 2루수인지 보여줬다.
수비로 먼저 증명했다. 3회초 1사 1,3루에서 문성주의 직선 타구에 왼팔을 쭉 뻗어 낚아챘다. 중전 안타성 타구를 잡아낸 뒤 1루 주자 홍창기를 태그 아웃시키며 더블 플레이로 이닝을 끝냈다. 4회초 2사 1루에서는 신민재의 좌월 2루타 때 중계 플레이에서 커트맨 역할을 잘했다. 홈으로 가는 송구를 끊어 3루 오버런을 한 오지환을 태그 아웃시키며 직접 또 이닝을 종료시켰다. 5회초에는 안익훈의 안타성 타구에 몸을 날려 잡은 뒤 정확한 1루 송구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들어온 타자를 잡아냈다. 김경문 감독의 박수를 이끌어낸 호수비였다.
타격에서도 4타수 3안타 1볼넷 2득점으로 4출루 활약을 펼치며 2번 테이블 세터 임무를 완수했다. 1회 첫 타석부터 풀카운트 볼넷으로 선취점 발판을 마련한 황영묵은 2회, 7회, 8회 좌전 안타를 쳤다. 특히 7회에는 5번의 파울 커트 끝에 9구째 직구를 공략해 선두타자로 출루, 추가 3득점의 포문을 열었다.
이날 병살타 3개 포함 4번의 더블 플레이에 관여한 황영묵은 “수비는 항상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 키움 시리즈 때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이 있어 순간순간 집중하려 했다”며 커트맨으로 오지환의 주루사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 “스프링캠프 때 상황별 포메이션 연습을 많이 했다. 채은성 선배님이 이런 상황이 나올 때 이미지 트레이닝을 미리 해놓아야 한다고 많은 조언을 해주신 게 도움이 됐다. 상대 미스가 나왔을 때 우리가 당황하지 않고 대처해야 하는데 연습 과정에서 나온 플레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한 것이라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출루 활약에 대해서도 황영묵은 “감독님께서 투수한테 공을 많이 던지게 하며 끈질기게 승부하는 걸 주문하신다. 안타를 친 것보다 감독님 주문에 맞춰서 플레이한 게 기분이 좋다”면서 “3할 타율은 언젠가 떨어질 수 있고, 내가 잘하면 더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타율에 신경쓰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 경기, 한 경기 나가서 잘하고 잘 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중퇴 후 6년 장기 계획을 잡고 프로에 온 선수답게 인상적인 활약에도 쉽게 들뜨지 않는다. 스스로 다잡는 모습에서 내면이 단단한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앞날이 더 기대되는 황영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