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의 분노가 상상을 초월한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4일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축구 국가대표팀 장비담당 기술직원 공개채용' 공지글을 올렸다.
KFA는 장비담당 기술직원 공고에 지원자격, 고용 형태, 근무지, 담당 업무, 근로조건, 접수방법, 접수기간, 전형 절차 등을 게시해 새로운 직원 채용 공고를 게시했다. 그러나 해당 게시물 댓글엔 온통 KFA를 조롱하는 댓글뿐이었다.
KFA는 지난 7일 "축구국가대표팀 차기 감독에 홍명보 감독 울산HD 감독을 내정했다"라고 알렸다. 뒤이어 13일 KFA는 "이사회 승인을 통해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을 공식 선임했다. 홍명보 감독은 코칭스태프 구성에 들어간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5개월 동안 감독을 찾아 나선 KFA는 전력강화위원회를 꾸려 수많은 외국인 감독과 접촉했고 실제로 한국 감독직에 크게 관심을 보인 이도 있었다. 하지만 KFA는 홍명보 감독을 택했다.
지난 8일 이임생 기술본부 총괄이사는 "홍명보 감독은 앞서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고, 울산 HD에서는 K리그 우승 2회 등을 차지했다"며 "홍명보 감독이 외국 감독보다 더욱 구체적인 성과를 냈다"라고 평가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10일 광주FC전을 끝으로 울산HD의 지휘봉을 내려놨다. 2027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A대표팀을 이끌 예정이다. 당장 9월에 있을 북중미 월드컵 3차예선부터 팀을 지도해야한다.
홍 감독 선임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은 분노했다. 지난 3월부터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전력강화위원(전강위)으로 참여, 외국인 감독들과 활발히 대화를 주고받으며 감독 추천 작업을 맡았던 박주호가 8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전강위의 행태를 폭로하면서 본격적인 분노 표출이 시작됐다.
박주호는 해당 영상을 녹화하는 도중 홍명보 감독의 내정 소식을 전달받았고 이에 "지난 5개월이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정말 허무하다.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전력강화위원회 사퇴 의사를 밝혔다.
박주호는 "지금 흘러가는 방향이면 전강위가 필요 없다고 진작에 말했다. 위원회가 필요없다는 확신이 든다. 홍명보 감독님도 안 하신다고 했는데 하게 됐다.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과정에서 박주호는 "제시 마시 감독은 준비했던 후보 중 가장 현실적인 후보였다. 마시 감독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어떤 축구를 할 것인지 물어봤다. 한국 선수들에 대해 관심이 전부터 컸더라. (황)희찬이와의 인연도 있기에 한국인만의 장단점, 성향 등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마시 감독과 협상은 잘 되지 않았다. 이에 박주호는 "저는 충격이 컸다. 긍정적인 교류가 있었다. 지난 3월 접촉했다. 마시 감독은 '나는 한국이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 서로의 접점을 맞추면 될줄 알았다. 아쉽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해당 영상에서 박주호는 "어느 정도 잘 맞추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에 마시를 추천했을 때 다들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마시가 누군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라며 감독 선임을 위해 모인 전력강화위원들이 마시를 잘 몰랐다고 폭로했다.
박주호의 폭로를 시작으로 축구인들도 하나둘 목소리를 냈다. 2002 한일 월드컵 영광의 멤버인 이영표는 "너무 깜짝 놀랐다. 이번만큼은 협회가 진짜 좋은 외국인 감독을 모셔 올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저도 열망했다. K리그 감독을 빼 왔다는 비판에 대해 저는 KFA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K리그 팬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 대표팀을 향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홍명보 감독 선임에 크게 놀라움을 표했다.
이어 "저를 포함해 우리 축구인들의 한계를 봤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행정을 하면 안 된다. 축구인들은 행정을 하면 안 되고 말 그대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 상황을 보며 우리는 아직 그럴만한(행정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앞서 12일 박지성은 "첫 번째로 드는 감정은 슬픔"이라며 "한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아직도 축구라는 분야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라며 KFA를 향한 실망감을 이야기했다.
그는 "둘째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축구인으로서 너무 슬픈 상황을 맞이하고 있고, 마음이 상당히 아픈 상태"라고 전했다.
박지성은 "가장 슬픈 건 뭐 하나 확실한 답이 없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2002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는 상당히 변했고, 앞으로 상당히 많이 변해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와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렇게 받았다"라고 말했다.
뒤이어 그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기분"이라며 큰 실망감을 전했다.
위르겐 클린스만이라는 좌절과 실망을 맛본 팬들은 KFA에 다시 한 번 배신당했다는 입장이다. 클린스만 선임 과정과 마찬가지로 적합한 프로세스와 절차 없이 진행된 감독 선임이었기 때문이다.
KFA는 이와 관련해 장문의 해명문을 내놨다. 지난 22일 KFA는 "물론 자료를 잘 준비해 오면 그 감독과 에이전트가 의욕있고, 성의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경쟁력이 있다는 근거는 아닐 것"이라며 "국내 감독의 경우 PT나 여러 자료를 확인하지 않은 건 기본적으로 전력강화위원회 1차 회의에서부터 국내감독들의 경우 플레이 스타일이나 팀을 만들어가는 축구철학, 경력 등에 대해 대부분 위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홍명보 감독의 경우 대표팀, 올림픽 대표팀은 물론 최근 울산을 4년간 맡으며 K리그 2연패 하는 등 울산의 경기를 통해 확인됐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내 감독을 뽑는다면 (현직이더라도) 홍명보 감독을 뽑아야한다는 의견이 위원회 구성 초반부터 거론됐다. 또 한 나라의 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을 뽑으면서 모든 후보에게 일률적으로 똑같은 걸 묻고 요구하는 면담 방식을 적용하는 게 최선은 아닐 것"이라며 "세부적 상황과 관점에서 최종 3명의 장단점이 평가된 것이지, 면담 방식에 특혜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팬들은 "우린 그걸 두 글자로 '특혜'라고 부릅니다"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불똥은 직원채용 공고 게시글에도 튀었다. KFA는 24일 국가대표팀 장비담당 기술직원을 뽑는다고 알리면서 '서류전형→면접전형→최종합경'이라는 절차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 팬은 "뭐 하러 공개채용하고 면접을 봐. 그냥 잘 아는 지인 한 명 면접 생략하고 집 앞에서 2~3시간 기다렸다가 해달라고 해"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임생 기술이사가 홍명보 감독의 집을 찾아가 2시간가량 기다린 후 감독직을 '부탁'한 것을 비꼬는 내용이었다. 해당 댓글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또 다른 팬들은 "새로운 회장은 공개채용 안 하나요", "내정돼 있을 텐데 뭐 하러 이런 글을 올려요" 등의 댓글을 남겼다.
한편 외국인 코치, 선수단 면담을 위해 지난 15일 유럽 출장길에 올랐던 홍명보 감독은 25일 오전 귀국한다. 오는 29일 첫 공식 취임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