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대결을 벌였다. 둘 다 NC 다이노스 소속이라는 것도 이색적인데 시즌 도중 방출된 타자가 MVP를 받은 투수에게 치명타를 입힌 것도 흥미롭다. 같은 NC 출신 메이저리거 에릭 페디(31·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크리스티안 베탄코트(33·시카고 컵스)의 희비가 엇갈렸다.
페디는 지난 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 5이닝 6피안타(2피홈런) 무사사구 4탈삼진 5실점으로 무너졌다. 세인트루이스가 3-6으로 지면서 페디는 시즌 5패(7패)째를 당했다. 평균자책점도 3.11에서 3.34로 상승했다.
호된 신고식이었다. 지난달 30일 LA 다저스가 포함된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페디에겐 이적 첫 등판이었다. 가을야구를 위한 세인트루이스의 승부수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2회에만 홈런 2개를 맞고 5실점 빅이닝을 허용한 게 아쉬웠다.
2회 1사 후 니코 호너, 댄스비 스완슨, 피트 크로우-암스트롱에게 3연속 안타를 맞고 첫 실점한 페디는 베탄코트에게 스리런 홈런을 얻어맞았다. 베탄코트는 페디의 초구 몸쪽에 들어온 시속 89.5마일(144.0km) 커터를 밀어쳤는데 우중간 담장을 넘어갔다. 스코어를 4-0으로 벌린 한 방이었다.
베탄코트의 시즌 3호 홈런이자 컵스 이적 첫 홈런이었다. 지난 6월말 마이애미 말린스에서 방출된 베탄코트는 지난달 6일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고, 백업 포수 토마스 니도가 무릎을 다치면서 부상자 명단에 오르자 27일 콜업됐다. 이날까지 컵스에서 4경기 중 3경기를 선발 포수로 출장했다.
몇 경기 안 되지만 타율 3할6푼4리(11타수 4안타) 1홈런 4타점 1볼넷 3삼진 OPS 1.144로 인상적인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이날도 페디를 무너뜨린 스리런 홈런 이전에 1회부터 2루 도루를 저지하며 공수에서 존재감을 보여줬다. 경기 후 베탄코트는 “리글리필드에서 홈런 치다니,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전처럼 원정팀이 아니라 홈팀 선수로 홈런을 쳤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는다. 놀라운 순간이다”며 기뻐했다.
크레이그 카운셀 컵스 감독은 “선수는 기회를 얻으면 최대한 살려야 한다. 베탄코트를 그렇게 하고 있다. 선발로 나선 3경기에서 타격으로도 승리에 기여했다”고 칭찬했다. 이날 컵스 선발투수 하비에르 아사드도 “베탄코트는 훌륭한 포수다. 이닝마다 말을 걸어주며 소통을 잘한다”고 치켜세웠다.
베탄코트는 한국에서 실패한 외국인 선수였다. 2019년 KBO 신규 외국인 선수 상한액 100만 달러를 채워 NC 유니폼을 입었지만 53경기 타율 2할4푼6리(203타수 50안타) 8홈런 29타점 OPS .712에 그치며 시즌 중 방출됐다. 창원NC파크의 개장 1호 홈런 주인공으로 포수 마스크도 11경기나 쓰며 주목을 받았지만 적응에 실패했다.
미국에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지만 2022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콜업돼 5년 만에 빅리그 복귀했다. 시즌 중 탬파베이 레이스 트레이드된 뒤에도 생존하며 메이저리그 계약도 따낸 베탄코트는 2023년까지 2년 연속 100경기 이상 뛰며 11개씩 홈런도 쳤다.
시즌 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의 웨이버 클레임으로 팀을 옮겼고, 다시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돼 올 시즌을 맞이했다. 연봉도 205만 달러로 올랐지만 38경기 타율 1할5푼9리(82타수 9안타) 2홈런 7타점 OPS .466으로 기대 이하 성적을 내며 방출됐다. 하지만 컵스에서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메이저리그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NC 출신인 페디를 상대로 이적 첫 홈런을 쳤다는 점이 흥미롭다. 투수 3관왕에 오르며 MVP를 받을 정도로 한국에서 성적은 페디가 월등했지만 이날은 베탄코트가 웃었다. 경기 후 페디는 “이적 첫 경기라 특별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커맨드가 끔찍한 날이었는데 다신 이런 실수를 해선 안 된다. 다음 경기에서 만회해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