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투수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았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최고 타자로 떠오른 김태연(27)의 존재감이 이렇게 커졌다.
KIA 에이스 양현종은 지난 3일 대전 한화전에서 6이닝 7피안타(1피홈런) 1볼넷 7탈삼진 3실점(2자책) 호투로 KIA의 7-3 승리를 이끌며 시즌 8승(3패)째를 수확했다. 2회말 정전으로 인한 38분간 경기 중단 변수도 극복하며 에이스답게 팀의 4연패를 끊어냈다.
사실 투구 내용 면에선 진땀을 흘린 경기였다. 2회 수비 실책 이후 최재훈에 선제 스리런 홈런을 맞았고, 6회를 제외하곤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며 위기가 이어졌다. 김태연이 양현종에게 유일하게 안타 2개를 치며 가장 괴롭혔다. 1회 중전 안타에 이어 5회에도 우전 안타를 치고 나갔다. 5회 두 번째 안타는 양현종의 4연속 체인지업 승부에도 말리지 않고 바깥쪽 공을 밀어쳐 무사 1,2루 찬스를 연결했다.
하지만 양현종은 노시환과 채은성을 연속 삼진 처리한 뒤 안치홍을 1루 땅볼로 유도하며 실점 없이 위기 극복했다.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며 이닝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양현종은 1루 주자 김태연과 잠시 마주쳤다. 양현종이 김태연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김태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 양현종은 “최근 한화 타자들의 타격감이 너무 좋은데 우리가 전력 분석 했을 때 (김태연이) 한화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타자 중 한 명이었다. 요즘 감이 워낙 좋더라. 농담으로 너무 잘 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한 것이다”고 밝혔다. 김태연은 양현종을 상대로 통산 맞대결에서도 타율 4할2푼1리(19타수 8안타) 1홈런 3볼넷 3삼진으로 유독 강했다. 통산 176승 대투수라고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타자다.
올해 김태연의 타격은 양현종에게만 강한 게 아니다. 올 시즌 87경기 타율 3할1푼9리(285타수 91안타) 11홈런 50타점 46득점 36볼넷 59삼진 출루율 .399 장타율 .502 OPS .901로 커리어 하이 성적을 내고 있다. 규정타석에 들어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돌파했고, 100안타 달성도 머지않았다. 입단 때부터 주목받은 타격 재능이 올해 제대로 폭발하고 있다.
시즌 초반에는 백업으로 1루수, 2루수, 우익수를 오가는 유틸리티로 내외야를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5월 중순부터 선발 출장 비중을 늘렸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부터 후반기에는 우익수로 포지션도 완전히 고정돼 주전 대우를 받고 있다. 지난달 18일 창원 NC전부터 최근 12경기 연속 3번 타자로 나서며 중심타선에 안착했다. 출장 기회가 확실히 보장되자 타격감이 더 좋아졌다. 후반기 18경기 타율 3할6푼9리(65타수 24안타) 3홈런 10타점 OPS 1.010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다.
어느덧 시즌 전체 성적도 한화 팀 내 최고 타율, OPS로 뛰어올랐다. 외국인 타자 요나단 페라자가 6월부터 주춤한 사이 김태연이 타율과 OPS 모두 추월하면서 명실상부한 올 시즌 한화 최고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김경문 한화 감독도 “노시환을 뒷받침할 타자가 팀에 조금 더 있어야 하는데 김태연이 그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3번 타순에 계속 넣을 생각이다”며 두터운 신뢰를 표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내부와 외부 모두 달라졌지만 김태연은 이름 그대로 태연하다. 양현종과 이야기를 나눈 것에 대해 “1루 수비 커버를 들어왔을 때 인사를 했는데 ‘요즘 왜 그렇게 잘 치냐’고 물어보셔서 ‘아닙니다’라고 했다”는 김태연은 “양현종 선배와 평소 친분은 없지만 야구장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사이다. 그날 안타 2개를 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투수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기분 좋은 일지만 너무 들뜨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최근 타격에 대해서도 김태연은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운 좋게 야수가 없는 데로 타구가 가는 것 같다”며 “물론 타격이 항상 잘할 순 없으니까 (잘 맞고 있어) 기분이 좋긴 하다. 코칭스태프에서 지금은 결과가 나오니 기술적인 부분보다 흐름이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멘탈이나 체력 관리를 많이 해주고 있다”고 코치진에 공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