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이 번쩍할 때 어머니 품에서 무사했지만, 모친 흰옷은 새빨간 피로…” 장훈 어린 시절 기억에 MC들 오열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4.08.27 06: 20

3000안타 전설 장훈 씨 TV 방송에 출연, 과거 에피소드 전하며 건재 과시
[OSEN=백종인 객원기자] “프로 초창기에 번 돈 중에 약간이나마 쪼개 어렵게 사는 어머니께 보내드렸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집에 가보니까, 그 돈을 하나도 안 쓰고 가지고 계시더라.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그걸 어떻게 쓰냐. 그건 네 돈 아니냐’고 하시더라.”
통산 3000안타를 돌파해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타자로 남아있는 장훈(84) 씨가 오랜만에 TV 방송에 출연, 건재를 과시하며 예전 일화 몇 가지를 들려줬다.

2012년 잠실에서 열린 한일 레전드 매치 때 장훈 씨의 모습  / OSEN DB

장훈 씨는 26일 저녁에 방영된 BS12의 ‘쓰루베짱과 사와코짱~쇼와의 대선배와 이상한 2명’에 게스트로 나갔다. 유명 MC 쓰루베 쇼후쿠테이(72)와 아가와 사와코(70)가 진행하는 토크쇼다.
한동안 중병설에 시달리던 장훈 씨는 이날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 “허리에 통증이 있어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제는 괜찮다. 밥도 잘 먹고, 술도 마시며 다닌다. 수술 후에 살이 좀 빠졌지만, 지금은 다시 쪘다”고 근황을 밝혔다.
이날 방송 중에는 힘겨웠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나는 덩치가 이렇게 크고, 성격도 못돼서 괴롭히는 녀석들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이나 주변 (한국인) 친구들은 많은 차별을 받았다”며 “특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다”고 말했다.
장훈 씨의 기억에는 히로시마에 살던 시절 입었던 원폭 피해의 기억도 생생했다.
“5살 때였다.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나오는데 뭔가 엄청난 빛이 ‘번쩍’ 하더라. 마침 어머니가 나를 안아 온몸으로 막아주셨다. 흰 옷을 입고 계셨는데, 눈을 뜨니까 새빨간 피가 어머니 옷 위로 배어 나오더라. 수많은 유리 파편 때문이었다”라며 끔찍했던 당시를 전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도 나와 누나에게는 ‘빨리 도망치라’고 해서 50미터 정도 떨어진 포도밭으로 피신했다”며 “그 그늘에 숨어서 그나마 피폭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BS12의 프로그램 ‘鶴瓶ちゃんとサワコちゃん…’에 출연한 장훈 씨. /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장훈 씨는 또 “오사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니폰햄 화이터즈)에 입단해 프로 선수가 됐다. 4년째에는 올스타에도 뽑힐 수 있었다. 마침 고향(히로시마)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MVP가 됐다. 그때 어머니와 형을 야구장에 초대했는데,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고 감격에 젖었다.
이어 “프로 선수가 된 뒤로는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매달 조금씩 생활비를 보내 드렸다. 그런데 올스타전 때 보니까 그 돈을 손도 대지 않고 계시더라. 깜짝 놀라서 ‘뭐야, 엄마. 왜 안 쓰고 있는 거야’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괜찮다. 그 돈을 내가 어떻게 쓰니. 그건 네 돈인데’라고 하시더라.”
얘기를 전하던 장훈 씨는 “옛날 여자들은 뭐랄까. 강하시다”라며 울먹임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그러자 두 MC도 울컥한다. 아가와(여성 MC)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쓰루베(남성 MC)는 “정말 대단하시다”라며 아예 소리 내며 운다.
장훈 씨는 또 선수 시절의 일화도 몇 가지 떠올렸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뒤였다. 나이도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섰고, 여러 가지 타이틀도 따서 유명해진 다음이다. 어느 날 상대 투수의 공에 맞았다. 통증 때문에 2~3일 정도는 게임에 나가지 못할 지경이 됐다. 그러자 감독이 부르더라. 그때 들은 얘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감독은 나가시마 시게오였다. 장훈 씨보다 4살 많다. 그에게 들은 얘기는 이렇다.
“이봐, 오늘 자네를 보러 온 어린이 팬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아? 4시에 관중석 문을 여는데, 2시부터 부모님 손을 잡고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군. 이 더운 날씨에 말이야. 그 친구들 마음이 어떻겠나. ‘오늘 하리모토(장훈의 일본 이름) 선수가 안타를 쳤으면 좋겠다’ 하는 설렘이 가득하지 않겠나?”
장훈 씨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프로야구 선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꾼 전환점이었다”라고 말했다.
BS12의 프로그램 ‘鶴瓶ちゃんとサワコちゃん…’에 출연한 장훈 씨. /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나가시마 감독과의 일화는 또 있다.
“한번은 지방 원정 때였다. 게임 종반 1사 1, 3루 기회에 타석에 들었다. 타격감이 꽤 괜찮던 시기였다. 그런데 벤치에서는 스퀴즈 번트를 생각했다. 나는 설마 작전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사인을 놓쳤다. 대신 중전 안타를 쳐서, 더 좋은 결과를 냈다. 물론 게임도 이겼다.”
그러나 경기 후에 감독실로 불려 갔다. 나가시마 감독이 눈을 크게 뜨며 “왜 사인대로 하지 않았냐”며 역정을 냈다. “못 봤다”고 대답하자 일장 훈시가 돌아왔다.
“자네 정도의 타자라면 외야 플라이는 칠 수 있겠지. 아니면 어떻게든 3루 주자를 불러들이는 타격은 해주겠지. 하지만 그때는 1점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어. 그걸로 충분했지. 그게 감독인 내 방식이야. 나중에 네가 감독이 되면 내 기분을 알게 될 거야.”
장훈 씨는 “그 말을 하는 나가시마 상을 보면서 정말로 야구에 대해 순수하고, 누구보다 열정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곧바로 두 손을 모아서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 존경하는 마음은 지금까지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장훈 씨는 23년간 한 TV 프로그램(TBS ‘선데이 모닝’)에서 고정 패널로 활약하다가, 2021년 하차했다. 아가와 MC는 “실례의 말이지만, 그렇게 완고한 아저씨 같은 느낌으로 평론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6월 도쿄돔에 시구자로 초대돼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는 허리 수술 후유증으로 지팡이를 짚고, 걸음걸이도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이를 본 팬들의 염려가 많았지만, 이후 각종 매체를 통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 6월 도쿄돔에서 시구자로 참석한 장훈 씨의 모습. / 닛폰 TV 야구 중계방송 공식 유튜브 채널 ‘DRAMATIC BASEBALL 2024’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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