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던 에버튼, ‘강등 운명’의 격랑에 휘말릴 수도[최규섭의 청축탁축(清蹴濁蹴)]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24.09.23 08: 12

에버튼 FC는 1878년에 창설돼 놀랍게도 146년의 연륜을 쌓은 전통 명가(名家)다. 1888년 출범한 잉글리시 풋볼리그[EFL]와 1992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첫걸음을 내디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모두 원년 멤버의 하나로 자리해 1부리그의 성장과 발전에 한몫을 거들었다. EFL과 EPL 창설을 같이한 클럽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톤 빌라, 그리고 에버튼 등 세 클럽뿐이다. 1부리그에 참가한 시즌이 가장 많은 클럽으로서, EFL 9회 우승의 관록이 돋보이는 에버튼이다.
에버튼의 홈구장은 구디슨 파크다. 1892년에 지어졌으니, 구단 역사에 버금가는 132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축구 경기장이다. 1세기 반에 가까운 오랜 세월, 에버튼이 누리고 겪은 영광과 좌절을 같이해 왔으니 ‘반려자’라 할 만하다.
그런데 에버튼은 2024-2025시즌을 끝으로 구디슨 파크와 고별한다. 2025-2026시즌부터 홈구장을 브램리 무어항에 신축한 경기장으로 옮긴다. 토피(The Toffees: 에버튼의 별칭)가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는 ‘에버튼 스타디움’이다. 구디슨 파크 시대는 가고 에버튼 스타디움 시대가 왔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으려는 야망을 부풀리는 에버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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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에버튼은 역경에 처해 있다. 열망을 꽃피우기 전 사그라질 고비를 맞닥뜨린 상황이다. 자칫 EFL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에버튼 스타디움 시대의 막을 올려야 할지 모르는 곤란한 지경에 빠진 2024-2025시즌을 치르는 에버튼이다.
새 보금자리에서 맞이할 2025-2026시즌을 EFL 챔피언십에서 시작할 위기에 맞닥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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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맥락에서, 에버튼은 지난 21일(이하 현지 일자) 다소나마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2024-2025 EPL 5라운드에서, 비로소 시즌 첫 승점을 따냈다. 레스터 시티와 1-1로 비겨 비록 1점이긴 해도 고대하던 승점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꼴찌에선 벗어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승점이다. 승점, 득점(5골), 실점(5골), 득실 차(-9)까지 똑같은 울버햄튼 원더러스와 함께 최하위(19)다. 초반일망정 강등 0순위임은 물론이다. 지난 세 시즌과 대비할 때 더욱 깊어진 침체의 골을 엿볼 수 있다. 2021-2022시즌부터 2023-2024시즌까지 강등권(18~20위) 언저리(15→ 17→ 16위)를 맴돌면서도 용케 강등의 멍에를 뒤집어쓰지는 않았던 에버튼이었다.
에버튼을 지휘하는 숀 다이치 감독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2023-2024시즌이 끝나고, 언론으로부터 “팀을 EPL에 잔류시킨 점이 사령탑으로서 이룬 가장 큰 업적인가?”라는 빈정거림이 섞인 질문을 받았을 정도니, 두말해서 무엇하랴.
이번 시즌, 에버튼은 불명예스러운 ‘기록의 늪’에 빠졌다. 지난달 31일 구디슨 파크에서 맞이한 3라운드 홈 AFC 본머스전과 지난 14일 빌라 파크로 찾아가 치른 4라운드 원정 아스톤 빌라전에서, 잇달아 역전패(2-3)의 쓴잔을 들었다. 단순한 2연속 역전패가 아니었다는 데에서, 더욱 치욕의 쓰라림을 느껴야 했다. 2골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당한 2연패는 EPL 역사상 최초였다. 또, 개막 홈 브라이튼 호브 앨비언전(0-3 패)과 2라운드 원정 토트넘 홋스퍼전(0-4)에서, 7골씩이나 내주는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며 ‘동네북’ 신세로 전락할 만큼 곤혹스러운 격랑에 휩쓸리기도 했다. 이번 시즌을 치르는 유럽 5대 리그의 96개 팀 가운데 최악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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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듯, 이 같은 부진은 빈약한 투자에서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여름, 에버튼은 선수 판매로 8,365만 유로(한화 약 1,249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 가운데 5,935만 유로(약 886억 원)는 스타 미드필더인 아마두 오나나를 아스톤 빌라로 보낸 값이었다. 반면, 영입에 들어간 돈은 5,020만 유로(약 749억 원)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토피 팬이 대대적 영입이 절실한 여름이라고 생각했으나, 구단 소유권에 대한 불확실성과 재정 문제로 말미암아 실망스러운 기간이었을 뿐이다.
트랜스퍼마크트가 평가한 EPL 각 클럽의 현재 시장 가치를 봤을 때, 에버튼은 열여섯 번째에 불과하다(3억 4,910만 유로·약 5,212억 원). 오직 풀럼(3억 4,200만 유로·약 5,106억 원)과 승격된 세 클럽(레스터 시티·입스위치 타운·사우스햄튼)만이 에버턴보다 낮은 시장 가치의 스쿼드로 짜여져 있을 뿐이다.
EPL 출범 이래, 에버튼은 33시즌을 줄곧 자리를 지켜 온 6개 클럽 중 하나다. 손흥민이 몸담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를 비롯해 아스날, 첼시, 리버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EPL ‘단골손님’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부리그에 둥지를 튼 세월이 71년에 이른다. 마지막 승격 시기는 1953년이었다. 이 기록을 뛰어넘는 클럽은 아스날(1913년~)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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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밭길이 있긴 했어도 오래도록 맺어 온 에버튼과 EPL의 동반 관계가 2025년 5월에 끝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최악의 시즌을 시작한 에버튼이다. 그러나 “강등의 운명을 피하기 힘들다”라고 확언하기엔, 아직 시즌 초반이다. “10경기가 끝날 때까지 순위표를 보지 마라”라는 영국의 오래된 속담처럼, 반등에 필요한 경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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