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 애런 저지(32·뉴욕 양키스)의 첫 월드시리즈는 너무 잔인했다. 포스트시즌 내내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홈팬들에게도 야유를 받더니, 수비에서 대역전패의 발단이 된 치명적 실수로 경기를 망쳤다.
양키스는 지난 3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브롱스 양키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4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6-7 역전패를 당했다. 시리즈 전적 1승4패로 다저스에 패한 양키스는 2009년 이후 15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좌절됐다. 홈에서 다저스의 우승 파티를 지켜봐야 했다.
경기 내용은 결과보다 더 아쉬웠다. 1회 저지의 투런 홈런으로 기선 제압하며 4회까지 5-0 넉넉한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5회 3차례 결정적인 수비 미스로 5실점 빅이닝을 허용했다. 그 시작이 바로 중견수 저지의 포구 실책. 무사 1루에서 토미 에드먼의 평범한 뜬공 타구를 저지가 놓친 것이다.
저지 정면으로 날아간 평범한 뜬공 타구를 말도 안 되게 놓쳤다. 1루 주자 키케 에르난데스에게 시선이 향하면서 타구를 끝까지 보지 못했고, 포구 순간에 타구는 글러브를 맞고 땅에 떨어졌다. 저지는 정규시즌 때 1958이닝 동안 무실책을 기록할 만큼 수비가 뛰어나다. 이날도 4회 프레디 프리먼의 큼지막한 장타성 타구를 펜스에 부딪치며 점프 캐치하기도 했지만 바로 다음 이닝에 황당 실책을 저질렀다.
저지의 실책 이후로 양키스는 귀신에 홀린 듯 실수를 연발했다. 계속된 무사 1,2루 윌 스미스의 유격수 땅볼 때 앤서니 볼피가 3루 승부를 택했지만 송구가 원바운드로 들어갔다. 3루수 재즈 치좀 주니어가 놓쳤다. 연속 실책으로 무사 만루가 된 양키스 선발투수 게릿 콜은 개빈 럭스와 오타니 쇼헤이를 연속 삼진 잡으며 분위기를 바꾸는 듯했다.
그러나 무키 베츠의 1루 땅볼 때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지 않았다. 1루수 앤서니 리조가 직접 베이스를 찍을 줄 알고 뛰다 말았다. 그러나 배트 끝에 맞아 회전이 걸린 타구였고, 리조는 앞으로 달려오지 않고 안전하게 포구했다. 당연히 콜이 1루로 베이스 커버를 들어올 줄 알았는데 없었다. 그 사이 베츠가 전력 질주하면서 1루 땅볼 타구가 내야 안타로 바뀌었다. 리조의 플레이도 느슨했지만 투수에게 기본 중의 기본인 베이스 커버를 망각한 콜의 잘못이 컸다.
3루 주자 홈에 들어오며 2사 만루 위기 이어졌다. 멘탈이 흔들린 콜은 프레디 프리먼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에게 중견수 키 넘어가는 2타점 2루타를 맞았다. 순식간에 5실점 빅이닝을 허용하며 5-5 동점이 됐다. 콜은 7회 2사까지 108구를 던지며 6⅔이닝 4피안타 4볼넷 6탈삼진 5실점(무자책)으로 역투했지만 베이스 커버를 안 한 안일한 플레이로 아쉬움을 삼켰다.
‘MLB.com’을 비롯해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은 “최악이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정말 잔인하다”며 5회 베이스 커버를 가지 않은 것에 대해 “맞는 순간 얼마나 강한 타구인지 몰랐다. 공이 나를 지나갈 때 1루를 커버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공의 회전과 타구 위치를 잘 읽었어야 했는데 나와 리조 모두 그렇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캡틴’ 저지에게 있었다. 이번 포스트시즌 23경기 타율 1할6푼5리(85타수 14안타) 5홈런 12타점 OPS .649로 가을야구 타격 부진이 이어진 저지는 이날 모처럼 홈런 포함 2안타 2볼넷 4출루로 활약했지만 5회 수비 실책이 치명적이었다.
저지는 “내가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처리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오늘 밤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며 “내가 잘못했다. 다저스 같은 팀을 상대로 아웃을 낭비해선 안 된다.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두 번의 실수가 더 나왔다”고 자책했다.
이어 저지는 “월드시리즈에서의 패배는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이다. 다른 모든 패배와 마찬가지로 사라지지 않고, 전투의 상처로 남는다. 내 커리어가 끝났을 때에는 승리의 상처도 많았으면 좋겠다”며 다음을 기약했다.